2㎜ 국수 가닥 같은 실에 미세한 구멍 뚫어 오염물질 걸러내 깨끗한 수돗물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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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코오롱중앙기술원 신용철 에코연구소장이 지름 2mm의 분리막 다발을 펼쳐보이고 있다. 실 모양의 분리막에는 미세한 구멍이 수없이 나 있어 세균과 오염 물질을 걸러낼 수 있다. 이 분리막은 내구성이 뛰어나 공기 중에 보관해도 문제가 없다.[김경빈 기자]

커다란 스테인리스 수조 물속에 국수 다발처럼 생긴 노란 실타래가 한가득 들어차 있었다. 실타래 하나에는 수백 가닥의 실이 한데 묶여 있다. 마치 끓기 전의 국수 모양이다. 수조뿐만 아니라 천장 곳곳에도 하얀 다발이 매달려 있었다. 경기도 용인시 마북동 코오롱중앙기술원 에코연구소의 지하 1층 실험실 모습이다.

연구소 구내식당의 주방도 아닌 실험실에 웬 국수 다발일까. 이무석 멤브레인연구실장은 “실험실에서 개발한 분리막(여과막)인데 물속 미생물과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데 쓰인다”고 설명했다.

분리막을 실제 정수 과정에 이용한 모습.

그래도 좀 미심쩍었다. 녹·세균·발암물질 같은 수돗물의 오랜 골칫거리를 해결할 획기적 여과기법이라는 설명을 좀 더 확인해 보고 싶어져 지름 2㎜의 가느다란 국수 가락 하나를 가까이서 들여다봤다. 속 빈 전깃줄이나 노끈처럼 생겼다. 가느다란 실 모양의 튜브에 얇은 플라스틱(PVDF) 막을 입힌 구조라고 한다.

전깃줄과 다른 점은 플라스틱 코팅의 경우 전자현미경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지름 0.07㎛(마이크로미터, 1㎛=1000분의 1㎜)의 미세한 구멍이 수없이 나 있는 것이다. 여과막을 물에 넣고 빨대처럼 한쪽에서 빨아들이면 녹 찌꺼기나 작은 세균이 코팅에 걸리고 맑은 물만 모인다. 이광진 책임연구원은 “분리막에 균일한 구멍을 되도록 많이 뚫으면서도 튼튼하게 만드는 게 노하우”라고 말했다. PVDF 성분과 용매를 섞어 코팅하고, 용매를 물로 녹여내 용매가 있던 자리에 구멍이 생기도록 한다. 정수장 등 실제 현장에 도입할 때는 조립 과정이 필요하다. 분리막 3600가닥을 틀에 묶은 ‘모듈’이 기본단위다. 이 모듈을 모아 카세트를 만들고, 필요한 만큼 카세트를 쌓는다. 카세트를 물탱크에 넣고 맑은 물만 나오도록 한쪽에서 빨아들인다.

분리막은 정수장의 기존 모래 여과 방식에 비해 장점이 많다. 미생물 제거 효율이 높아 염소소독제 사용을 30% 줄일 수 있다. 소독을 덜하면 소독 부산물이자 발암물질인 트리할로메탄(THM)도 적게 생성된다. 수도관에 쌓이는 찌꺼기 양도 준다. 모래여과를 할 때보다 정수장 면적을 절반까지 줄일 수 있고, 자동 원격제어도 훨씬 쉽다. 수명은 7~10년.

이런 여과막은 최근 정부의 ‘녹색성장’ 구호 속에서 유망 기술로 각광받는다. 지난달 문을 연 서울 광화문의 녹색성장전시관 등에도 전시된다. 1989년 코오롱이 분리막 연구를 시작한 이래 10년 동안의 연구가 결실을 맺는 셈이다. 코오롱 연구팀은 95년 가정용 정수기용 소형 분리막을 상업화했고, 2001년 대규모 정수장용 분리막 개발에 들어가 200억원이 넘는 연구비를 쏟아부었다. 선진국에 비해 10년 정도 뒤진 수준이라지만 앞선 제품에도 허점이 없지 않아 연구팀은 힘을 내고 있다.

코오롱이 이런 제품을 착안하게 된 데는 당초 화학섬유 업종에서 체득한 ‘유전인자(DNA)’가 한몫했다. 기존에 만들고 있는 다양한 실 가운데 보강재로 적당한 것을 찾아내는 일부터 시작했다. 외국 제품보다 가는 실을 찾아 사용했더니 코팅재와 보강재 사이의 접착력은 훨씬 좋아졌다. 하지만 실에서 보푸라기가 생기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코팅제를 폴리술폰에서 PVDF로 바꿔 해결했다. 연구팀은 또 코팅 방법을 배우기 위해 전선 피복 공장을 찾기도 했다.

2002년 시범적인 파일럿 제품 개발에 성공한 연구팀은 제품에 대한 인식이 낮은 국내보다 미국·뉴질랜드 시장부터 두드렸다. 외국 제품에 비해 내구성이 뛰어나고 가격이 저렴한 점을 내세웠다. 마침내 노력이 결실을 거뒀다. 2007년 미국 하와이 코카콜라 공장 폐수처리장에, 올해 초에는 뉴질랜드 정수장 두 곳에 하루 500~640㎥의 맑은 수돗물을 생산하는 시설을 설치했다. 내년에는 서울 영등포정수장에 하루 2만5000㎥ 생산규모의 시설을 설치해 시범사업에 들어간다. 하루 5000㎥ 이상만 되면 분리막 장치를 설치할 수 있도록 7월 수도법이 개정된 덕분이다.

신용철 에코연구소장은 “많은 돈을 들여 개발해 놓고도 보급이 잘 안 돼 한때 사업을 접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코오롱 그룹 차원에서 ‘물산업’을 차세대 수종사업으로 정하는 바람에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환경부 산하 수처리선진화사업단의 남궁은 단장은 “분리막은 수돗물 생산은 물론 해수 담수화, 해양심층수 생산 같은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다”고 평했다. 환경부는 전국 500여 개 정수장 가운데 절반을 분리막 여과 방식으로 교체해 나갈 방침이다.


용인=강찬수 환경전문 기자 ,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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