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울산 앞바다 ‘물 반 고래 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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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4월 19일 오후 4시. 조선해(朝鮮海) 울릉도 남서쪽 24마일(약 38㎞) 해상. 선장이 갑자기 흥분하며 ‘고래 떼, 고래 떼’라고 외친다.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28m짜리 수염고래(참고래) 떼를 본 것이다.”

일본의 기행작가 에미 스이인(江見水蔭·1869∼1935)이 1906년 4월 16일부터 5월 3일까지 울산 장생포에 머물며 두 차례 포경선을 탄 체험기가 13일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울산 남구의 의뢰로 고래 역사문화를 연구 중인 울산대 연구팀(책임자 허영란 역사문화학과 교수)이 최근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서 발견한 『실지탐험 포경선』에 실린 내용이다.

허 교수는 “당시 일본의 수산업체로 장생포에 지사를 둔 동양어업주식회사의 의뢰를 받아 에미 스이인이 200쪽 분량의 포경선 탐험기를 써 도쿄 하구분칸(東京搏文館)에서 출간했다”고 설명했다.

“4월 18일 오전 9시 장생포에서 일본의 120t짜리 포경선 ‘니콜라이호’에 탑승해 첫 탐험에 나섰다. 울산만에서 130마일(약 209㎞) 떨어진 조선해 울릉도로 향한 배는 노르웨이 포수 요르덴센, 선장 나쓰메(夏目)가 타고 있다. 요르덴센은 당시 노르웨이가 10년간 포경을 금지하는 바람에 실직해 고래가 많다는 울산 장생포로 동료 한 명과 함께 와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튿날 오후 4시 수염고래 떼를 목격하고 그중 한 마리를 잡는 장면, 20일 오후 2시 장생포로 돌아와 잡은 고래를 일본 고래 해체선인 지요마루(千代丸)에 인도하는 모습까지 그려져 있다. 1906년 4월 24일 두 번째 포경선 탐험에서 28m짜리 흰수염고래 한 마리를 포획한 사실도 기록했다. “ 혹등고래(사진)·수염고래 등 일곱 종류의 대형 고래류가 떼를 지어 다녔다”며 당시 울산 앞바다에 대형 고래류가 많았음을 확인시켜 줬다.

허 교수는 “일본인이 남긴 탐험기에 울산 앞바다와 울릉도 근처의 동해가 모두 ‘조선해’로 기록돼 있어 독도의 영유권 주장이나 동해 표기 논란과 관련해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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