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선거제도 개선의 방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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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국회의원 선거제도 변경과 관련해 정치권이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어느 정치인이 어제 소선거구제를 주장하다가 오늘은 중선거구제를 주장하는 등 갈팡질팡하고 있어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혼란을 해결할 길은 무엇인가.

먼저 선거제도 '개혁' 이 아니라 '개선' 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정치권과 언론이 선거제도 '개혁' 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면 현행 제도의 모든 문제점이 단시간 내에 완전히 해결되는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으며, 또한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단시간 내에 획기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개혁' 이라는 용어대신 '개선'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내각책임제 개헌 문제를 매듭 지은 다음에 국회의원선거제도 개선 문제를 다뤄야 한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제와 다당제가 결합하는 경우 국회내 안정 다수세력을 확보하기가 힘들어 정치불안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통령제에서는 양당제가 바람직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소선거구제에서는 선거구마다 1위를 하지 않은 후보의 표는 모두 사표 (死票)가 돼 1~2개의 대정당이 득표율보다 높은 의석률을 차지하기 때문에 안정된 집권을 가능하게 하므로 우리 나라가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경우 소선거구제가 바람직하다.

이처럼 정부형태.정당제도.선거제도는 밀접히 연관돼 있기 때문에 내각제 개헌여부가 결정돼야 바람직한 선거제도 구상이 이뤄질 수 있다.

한편 선거제도 개선의 목표 중에서 어디에 우선 순위를 두느냐에 따라 새로운 제도에 대한 구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제도개선의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주의 해소가 최대의 과제라고 한다면 각 정당의 시도별 득표율의 표준편차를 계산해 전국적으로 골고루 득표하지 못한 정당에는 의석을 상대적으로 적게 주는 방식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3金이후 지역주의가 점차 완화되고, 오히려 지역패권지도자의 부재 (不在) 로 인해 기존 정당이 분열해 군소정당이 난립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군소정당에 불리하고 대정당에 유리한 소선거구제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

그런데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선 방안을 보면 소선거구제 -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등 2개의 선거방식을 결합시켜 각각의 장점을 살려나가자는 주장이 있으나 이런 제안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2개의 선거방식이 가지고 있는 단점만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의 선거제도 개정으로 소선거구제 -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결합시켰으나 각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률간의 비례성을 높이지 못하고, 또한 소선거구제의 폐해가 그대로 나타났다.

따라서 우리들이 새로운 선거제도를 구상하는 데 있어 여러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하지 말고,가장 중요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개발해야 한다.

그럼 현행 선거제도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선거구별 유권자 수의 심각한 편차와 전국구 비례대표제다.

현행 제도는 지역구당 유권자 수가 매우 불균등해 유권자 개개인의 표의 등가성 (等價性) 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예컨대 지난 총선에서 최다 선거구였던 성남시 분당구의 선거인 수는 23만1천9백명이었던 데 비해 최소 선거구였던 전남 무안군의 경우 5만2천9백25명에 불과해, 분당의 의석은 무안에 비해 약 4.4배의 인구를 대표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화 이후 지역정당들이 지방의 국회의원 수를 축소하는 데 반대한 결과 서울.경기 등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이 과대대표되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한편 현행 전국구 제도는 의석 배분이 지역구 의원 선출을 위한 유권자의 선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유권자의 의사가 직접 반영되지 않아 대표성의 원리를 저해하고 있다.

더욱이 전국구 공천이 당비 명목으로 돈을 받고 이뤄졌거나 정당지도자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대표성의 문제가 심각하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선거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비민주적인 공천제도가 계속되는 한 훌륭한 국회의원을 충원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공천권이 정당지도자의 손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거제도 개선에 있어 공천제도의 민주화가 가장 선결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선거와 공천제도 변경은 정치인들의 정치적 생명에 관련된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권이 스스로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부형태.선거제도.정당제도.의회제도.지방자치제도 등을 종합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연구하여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제도개선위원회' 를 국회에 설치하여 이 기구에 정치인뿐만 아니라 민간인 전문가.언론인.시민단체 등을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정치제도 개선 방안을 뉴질랜드처럼 국민투표에 부쳐 국민들의 이해와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김용호 한림대교수 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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