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노동정책 새전략] 원칙.여론으로 파업 잠재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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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파업사태와 관련, 22일 열린 정부의 긴급 노동관계장관회의는 이번 파업사태에 새로운 노동정책을 시험키로 했다.

과거처럼 노동계의 요구에 끌려다니다 물리력을 통해 해결하는 진부한 방식에서 탈피, 원칙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여론의 지지를 얻어 강경노선의 노동운동을 '고사 (枯死)' 시키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회의가 끝난 뒤 "불법행위는 타협이나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며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새로운 노사관계를 확립한다는 각오로 원칙에 따라 대응키로 했다" 고 발표했다.

과거처럼 '파업→공권력투입→대량구속→사면' 이라는 상투적인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정부는 서울지하철 노조가 이른 시일안에 '백기' 를 들고 나오지 않을 경우 주동자들의 직권면직을 강행하는 한편 대체인력의 양성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정부내에서는 81년 레이건 대통령 시절 미국 항공관제사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1만2천명을 해고하고 영구히 연방정부 및 관련기관에 종사할 수 없도록 한 전례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사면대상에서 불법파업 참여자는 영원히 제외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며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간접적으로 설명했다.

나아가 이번 기회에 노동계가 번번이 제동을 걸고 있는 구조조정 문제에 대해 명확한 선을 긋겠다는 생각이다.

구조조정 자체는 협상대상이 될 수 없으며 경제회생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각인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정부는 그러나 노조원들이 농성중인 서울 명동성당과 서울대에 공권력을 투입하는 강공은 당분간 자제키로 했다.

현재 파업 열기가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든데다 파업사태가 지속되면서 시민들의 불편과 불만이 점증, 여론이 지하철 파업에 등을 돌리고 있어 당장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부는 노동계와 농민 및 실업자 등 3주체가 서울에서 대규모 가두시위를 벌일 예정인 24일을 최대 고비로 보고 있다.

이날 집회에 대학생이나 실업자 등이 뒤섞여 과격 양상으로 변질된다면 여론의 지지를 얻어 공권력을 투입해도 늦지 않다는 판단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비교적 온건한 한국노총은 끌어안는 동시에 민주노총을 외톨이로 만드는 분리작전을 적극 구사할 계획이다.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의 파괴력이 예상보다 크지 않고 경제회생을 걱정하는 여론이 뒤를 받쳐주고 있어 정부로서는 차제에 민주노총의 반정부적 노선을 제압하겠다는 방침이다.

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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