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덤 쇠말뚝 수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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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남의 조상 묘에 쇠말뚝을 박는 괴이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지러운 세상이다.

뉴 밀레니엄을 목전에 두고 하루가 다르게 첨단과학이 발전해가고 있는 국제화 시대에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이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미신이 횡행하는 것 같아 정말 한심하고 안타깝다.

지난달 하순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의 조상 묘에서 쇠말뚝이 발견된 후 한달도 안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조상묘 여러 군데에서 식도 (食刀) 와 쇠말뚝이 무더기로 발견된 데 이어 온 국민이 성웅으로 추앙하는 충무공 산소에서도 똑같은 일이 발견됐다.

온 국민이 분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충효 (忠孝) 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가장 으뜸으로 꼽는 덕목이다.

그 중에서도 효는 시대가 바뀌어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최고의 가치다.

명절 때마다 민족대이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향을 찾아가는 것도 바로 이같은 조상숭배 의식 때문이 아닌가.

그러므로 남의 조상 묘에 쇠말뚝이나 식도를 박는다는 것이 얼마나 몹쓸 짓인지는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아무리 세태가 메마르고 내 자신의 영달이나 상대방 저주가 급하기로서니 인간으로서 못할 짓이다.

다른 사람의 음덕을 가로채거나 남을 잘못되게 만들어서 자신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 죄받을 일이다.

전문가들은 무덤에 쇠말뚝이나 식도 등 쇠붙이를 박는 것은 무속신앙에 따른 하나의 '저주의식' 이라고 설명한다.

일종의 해코지인 셈이다.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할 목적으로 전국의 명산 정상 등 곳곳에 단혈철주 (斷穴鐵柱) 를 박았던 일과 같은 맥락이다.

효과가 있을 턱이 없고 쓸데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이같은 사건이 끊이지 않으니 미신으로부터의 해방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이런 미신이나 주술 등이 성행하면 민심이 흉흉해지게 마련이다.

롯데그룹 신격호 (辛格浩) 회장 선친묘소 도굴사건 이후 남의 조상 묘소 쇠말뚝사건이 마치 모방범죄처럼 확산될 기미를 보이고 있으니 큰일이다.

처음 이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적극적인 수사로 범인을 검거했더라면 이같은 범죄가 더 이상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는 피해자의 의뢰가 없더라도 민심안정과 재발방지 차원에서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같은 행위를 저질렀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또 현행법에 이에 대한 마땅한 규제 법규가 없다면 법제화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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