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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메뉴 안 부럽다! “똑똑한 하나로 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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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분당 정자동에서 부일대광어 전문점을 운영하는 오재영(48)씨. 일반 횟집이 다양한 어종을 취급하는 것에 비해 오씨가 운영하는 매장의 메뉴는 2~3㎏대 광어 하나뿐이다. 한 마리에 9900원 하는 500g 광어와 비교하면 엄청난 크기다. “광어회만 판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고객이 줄을 서고 있다.

창업 시장에 부는 ‘핀셋’ 마케팅 열풍 #“타깃 고객 접근 용이하고 창업비용도 줄일 수 있어”

오씨는 “광어전문점으로 바꾼 이후 일 매출 150만원을 올리고 있다”며 “광어 하나만 취급해서 얻는 부가가치도 많다”고 말했다. 오씨가 광어라는 단일 메뉴로 승부를 거는 이유는 적지 않다. 무엇보다 광어 자체에서 버려지는 게 단 하나도 없다. 저녁에는 횟감으로 사용하고, 점심에는 광어회덮밥, 광어알초밥, 광어회국수, 광어회비빔국수, 광어전에 사용한다.

1㎏ 이상 광어회를 주문하는 고객에겐 광어알매운탕도 제공한다. 가격 또한 저렴하다. 질 높은 제주산 대광어는 1인분에 7000원이다. 고객 2명이 2만원을 내면 소주 두 병에 회 두 접시를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다.

고객 특정해 불황 탈출

단일 메뉴로 무장한 전문 브랜드의 파워가 거세지고 있다. 소비자의 다양한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해 등장한 멀티형 브랜드의 반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이를테면 하나만 콕 집어 승부하는 ‘핀셋 마케팅’이다. 대표적인 게 육회전문점이다. 쇠고기전문점의 수많은 메뉴 중 하나에 불과했던 육회를 단일 브랜드로 삼으면서 직장인의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육회지존·육회달인·육회한판·육회전설·육회천하 등 론칭된 브랜드도 10여 개 이상이다. 돼지 한 마리에서 반 근도 나오지 않는 갈매기살 전문점도 인기다. 장비·닭비골막창·갈매기조나단·나노갈매기 등의 브랜드가 시장에서 각축을 벌인다. 해산물전문점도 단일 메뉴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바람부리명태찜’은 명태 특유의 꼬들꼬들한 맛을 살리면서 주부와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가격은 저렴하다. 얼큰하고 푸짐한 명태콩나물찜 등 대부분의 메뉴가 1인분 5000원이다. 독자적 기술개발로 생산·유통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덕분이다. 단일 메뉴 전문 브랜드는 외식업뿐 아니라 카페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파리바게트·베스킨라빈스 등을 운영하는 식품전문기업 SPC그룹은 현재 푸딩을 다루는 디저트 전문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1개점을 오픈했는데, 소비자 반응이 괜찮다. 바삭한 페스트레에 부드러운 계란 크림으로 유명한 에그타르트 전문점도 증가하고 있다.

단일 메뉴 전문 브랜드 증가와 관련해 작은가게연구소 심상훈 소장은 “블루오션 개척의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고 레드오션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차별화 측면을 강조한 퍼플오션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며 “창업자 입장에서는 타깃 고객을 구체화하고 작은 규모의 매장 오픈이 가능해 창업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퍼플오션은 파랑과 빨강을 섞으면 보라색이라는 점에 착안한 개념으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 것을 재창조한다는 의미다. 단일 메뉴 전문 브랜드의 강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창업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일반적인 쇠고기전문점, 특히 한우고기전문점 창업의 경우에는 수억원의 창업비용이 소요된다.

매장 규모도 커야 하고, 주방장 등 종업원 인건비도 만만치 않다. 주차장 확보, 인테리어 등을 포함하면 창업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이에 반해 육회전문점의 경우 50㎡ 규모면 창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여기에 메뉴의 단일화로 조리방법을 단순화할 수 있어, 인건비 절감도 가능하다.

고객을 구체화해 높은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단일 메뉴 전문 브랜드의 강점 중 하나다. 창업컨설턴트 업체인 올창이의 성대권 대표는 “경기 불황이 깊어지면서 소비자의 소비 패턴이 단순화되고 있다”며 “특히 외식업의 경우에는 특정 메뉴를 저렴하게 즐기려는 준매니어 수준의 소비자가 많다”고 말했다.

바람부리명태찜의 장치봉 대표는 “소자본 창업을 희망하는 예비 창업자나 생계형 부부창업자, 업종전환을 꿈꾸는 기존 창업자 등으로부터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매니어층이 증가하면서 전문 브랜드의 성장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단일 메뉴 브랜드, 대박 공식 아니야

그렇다고 단일 메뉴 전문 브랜드를 연다고 꼭 성공한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엔 유의해야 할 점이 많다. 우선 입지 선정이 중요하다. 소비자가 찾기 쉬운 곳에 들어가는 게 관건이라는 얘기다. 예비 창업자들이 유동인구의 이동경로 등을 세심히 살펴 매장을 구해야 하는 이유다.

메뉴도 고객 특성에 맞춰 구성해야 한다. 전문 브랜드의 메뉴는 대개 식사류·안주류·후식류 등으로 나뉜다. 이에 따라 식사류는 점심 고객을, 안주류는 저녁 고객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육회전문점의 경우, 저녁부터 밤까지 5~7시간 정도에 매출이 집중된다. 매장 크기가 작아 많은 고객을 들일 수도 없다.

저녁 매출에만 매달려서는 실패 확률이 그만큼 커진다. 따라서 점심 고객을 잡기 위한 식사류 메뉴를 갖추고, 이에 대한 홍보가 뒤따라야 한다. 후발 브랜드와의 차별성도 갖춰야 한다. 먼저 만들었다고 능사가 아니다. 원조라고 주장해선 오래갈 수 없다. 실제 육회전문점의 경우, 크고 작은 브랜드가 난립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끊임없는 메뉴 개발 등을 통해 자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지훈 가맹거래사는 “많은 업종에서 전문 브랜드가 생겨나고 있지만, 차별화된 이미지를 갖춘 곳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브랜드명만 다를 뿐 매장 규모와 메뉴 구성 등이 유사하고 기존 업체를 모방한 브랜드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신중하게 브랜드를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호 창업 전문기자·leeho87@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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