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병역거부 처벌’ 법원이 위헌 제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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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법원이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며 입영 기피자를 처벌토록 한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법원은 특히 “입법자가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최소한의 고려라도 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11일 대법원에 따르면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4단독 박민정 판사는 입영 기피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안모(22)씨가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한 위헌 심판을 제청해달라”며 낸 신청을 받아들였다. 병역법 88조 1항은 현역 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불응한 때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박 판사는 결정문에서 “헌법 19조에 규정된 양심의 자유는 정신적 자유권 중에서도 기본이 되는, 매우 중요한 권리”라며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입영을 강제하고 거부 시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병역법 조항은 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위헌적 규정”이라고 밝혔다. 박 판사는 우선 “종교적 병역거부는 타인을 살상하지 않겠다는 평화주의에 입각한 것”이라며 “군 복무의 고역을 피할 목적이거나 국가공동체에 대한 기본의무는 이행하지 않으면서 맹목적 보호만을 바라는 단순한 병역기피와는 질적으로 구분된다”고 제시했다. 그는 이어 “현역병 대상자 가운데 종교적 병역거부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병력이나 전투력의 감소를 논할 정도라고 볼 수 없으며 대부분의 종교적 병역거부자가 1년6월 이상의 실형을 복역하고 있어 전투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울러 “병역 거부로 받게 되는 심대한 불이익 등을 종합해 볼 때 대체복무제도 등 대안 마련으로 양심의 자유와 병역 의무의 갈등을 해소할 방안을 모색할 의무가 입법자에게 있고, 현실적으로 그 이행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 판사는 “입법자가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어떠한 최소한의 고려라도 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양심상의 이유에 의한 비전투요원 복무나 대체복무에 관해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은 채 징역형의 형사처벌만을 하도록 하는 것은 (기본권) 최소 침해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결론 내렸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안씨는 2007년 5월 현역병 입영 통지서를 받고도 입영을 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했다.

국방부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9월 ‘2009년 대체복무제 시행’ 방침을 발표했다가 현 정부 들어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지난해 9월 춘천지법에서 병역법 88조에 대한 위헌 제청이 있었으나 국방부는 지난해 12월 대체복무제 도입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당시 국방부는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8.1%가 대체복무 허용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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