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온 여왕] 둘째날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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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방문 이틀째인 20일 엘리자베스 영국여왕 내외는 '한국 알기' 의 바쁜 하루를 보냈다.

◇ 산업현장 = 엘리자베스 여왕은 오전 첫 행선지인 서울당산동 대우자동차 디자인센터를 방문, 자동차 신모델 개발현장을 둘러봤다.

여왕 일행은 김우중 (金宇中) 대우그룹 회장 내외의 영접을 받고 신차 디자인 개발과정을 시찰했다.

옥색 정장차림의 여왕은 관계자들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다 모형자동차 앞에서 "어떤 재료로 만들었느냐" 고 질문. 대우자동차는 개발단계인 컨셉트 차량 '미래' 를 선보였으며, 여왕은 차량 내.외부로 나눠 전시된 차량모델을 10여분 동안 유심히 살펴봤다.

여왕은 전기장치를 통해 차량 운전대.운전석이 좌우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신기하다.

어떻게 기어박스를 없애 운전석을 자유자재로 옮길 수 있었느냐" 고 물었다.

이 모델은 영국 워딩의 대우자동차연구소에서 한.영 공동연구진이 제작해 지난 15일 한국으로 옮겨왔다.

김우중 회장은 "영국에 현지투자를 해왔던 것이 여왕 방문의 인연이 된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영국에서 대우자동차 판매가 늘어나길 기대한다" 고 말했다.

○…이어 여왕은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업체인 서울삼성동 애니드림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찾았다.

여왕이 애니드림사를 방문한 것은 이 업체가 영국 케임브리지 애니메이션으로부터 30억원어치의 프로그램을 구입하는 등 긴밀한 관계 덕분. 여왕은 "사무실이 깨끗하고 좋다. 투자를 많이 했겠다" 며 제작과정을 둘러봤다.

수행한 케임브리지 애니메이션의 밀러침 부장은 "여왕이 애니메이션에 대해 하도 많은 질문을 해 진땀을 뺐다" 고 말했다.

○ …부군 필립공은 서울구로2공단의 위성방송수신기 전문업체인 대륭정밀을 방문, 위성.케이블TV 수신기 생산.조립과정을 지켜보며 작업 중인 여직원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필립공은 직원들에게 "어떤 공정입니까"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습니까" 라고 물었다.

대륭정밀은 지난 95년 북아일랜드 현지공장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 이화여대.인사동거리 =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날 오후 이화여대를 방문, 약학대 인삼실험실과 학생회관 휴게실에 들렀다.

여왕은 5백여명의 학생들이 지상 4층 난간에서 열렬히 환호를 보내자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휴게실에 있던 학생들과 잠시 환담을 나눈 뒤 장애인 학생과 이대동문 대표들을 별도로 만났다.

이어 엘리자베스 여왕은 오후 4시50분쯤 서울 인사동의 전통문화거리에 도착, 고건 (高建) 서울시장 등의 영접을 받으며 40분 가량 명신당필방과 도자기점인 박영숙요 (窯) , 한복점 꼬세르 등에 들렀다.

여왕은 주인 이시규씨에게 붓쓰는 법 등을 물은 뒤 李씨가 가로.세로 3㎝ 크기의 낙관석에 여왕이 좋아하는 올빼미 문양을 새겨주자 직접 '엘리자베스' 를 영문으로 사인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가게를 나와 高시장에게 "컴퓨터시대인 지금도 저렇게 붓으로 글씨를 쓰느냐" 고 신기해했다.

여왕은 박영숙요에서 조선 왕실의 백자를 재현한 모습을 보고 "대영박물관의 컬렉션에 전시돼 있는 백자를 미리 보고 왔지만 역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릇" 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한복점 꼬세르에서도 한복을 일일이 살펴보면서 "한국 여인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 청와대 만찬 =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 내외가 20일 오후 7시30분부터 엘리자베스 여왕 내외를 위해 청와대 영빈관에서 베푼 국빈만찬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2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만찬 메뉴는 한정식. 여왕은 국립국악원이 연주하는 궁중악.태평무.판소리 등을 관람했다.

金대통령은 만찬사에서 "여왕 폐하께서는 한국 국민에게 1백년을 기다려온 귀한 손님이며 한국은 두분께 '영원한 친구의 나라' 로 남을 것" 이라며 양국의 우호협력 증진을 다짐했다.

진주로 장식된 크림색 실크 드레스와 다이아몬드 목걸이.귀걸이로 화려하게 치장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에 화답하듯 "영국의 브리티시 텔레콤 등 주요 기업들이 한국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는 것을 환영한다" 며 "金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국내외적으로 앞장서 수호하셨다" 고 말했다.

이양수.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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