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최근 경기회복이 주는 메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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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세계경제는 지금 불황과 일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요 선진국들은 연이어 금리를 인하하고 수요진작을 위한 팽창적인 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다.

그 이유는 지금 세계경제 저변에 깔려 있는 불황의 그림자가 너무 짙고 이에 따른 경제공황의 위험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아시아 국가들만 과투자를 해온 것이 아니라 과잉설비의 축적은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진전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민간부문의 부채는 급속히 늘어났다.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역할을 하던 아시아경제의 전락은 세계경제의 평균성장률을 떨어뜨리고, 과잉설비와 과다부채하에서의 저성장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확대, 그리고 이에 따른 세계적 신용공황의 가능성이다.

미국 및 유럽은 처음 아시아 경제위기를 내심 고소해하고 이들의 경제제도를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바꾸는 호기를 맞았다고 생각했던 듯하나 곧 이어 아시아경제 위축이 전세계 금융위기로 퍼질 조짐을 보이자 지난해 중반부터 금리인하 등 자기들 스스로 팽창정책으로 돌아섬과 동시에 위기에 빠져 있던 아시아 국가들로 하여금 재정팽창을 통한 경기부양정책을 쓰도록 유도하였다.

90년대 세계에너지 수요 증가의 약 3분의2를 차지하던 아시아 국가들의 경기침체는 유가 (油價) 를 떨어뜨리고 이는 다시 러시아의 채무상환능력을 떨어뜨려 러시아 경제위기를 초래하였으며 나아가 아시아 국가들의 환율절하는 이들과 수출시장에서 직접 경쟁관계에 있는 브라질과 같은 남미 국가들의 외환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 결과 신흥시장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던 선진국 금융기관들이 위기의 조짐을 보이게 됨에 따라 결국 미국과 유럽은 아시아 경제위기가 결코 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과 지금 세계경제의 근저에 깔려 있는 엄청난 불황의 위험성을 직시하게 된 것 같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해온 이러한 불황과의 싸움이 얼마나 성공적이 될지는 미지수다.

경제학적으로 말하자면 케인스학파의 견해를 믿느냐 아니면 신고전학파의 견해를 믿느냐에 따라 과연 이러한 팽창적인 통화정책이 경기를 진작시키는데 얼마나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예측이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일단은 이러한 정책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효과가 가장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곳이 바로 아시아지역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 및 여타 선진국의 금리인하는 엔화를 안정시키는 촉발제 역할을 했고 그 결과 전 아시아지역에서 금리를 인하하면서도 환율이 안정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었으며 이는 지난해 말부터 이 지역의 주식시장 활황과 소비심리 회복을 가능케 했다.

남미 경제도 정도는 다르나 최근 이와 비슷한 지표의 호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께부터 호전되기 시작한 우리 경제상황도 이러한 거시적인 국제경제환경의 관점에서 이해돼야 하며 지금 우리의 정책방향도 이러한 인식 위에 설정돼야 한다고 본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여러가지 쉽지 않은 구조조정과 제도개혁 과정을 거쳐온 것이 우리나라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도 빠른 회복을 가져온 요인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외환위기와 정권교체의 시기가 맞아 떨어진 우리나라는 주위의 어떤 나라들보다 제도개혁과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유리한 정치적 상황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며 우리가 그것을 충분히 활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다른 평가가 있을 수 있다.

어쨌거나 지금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은 우리 경제상황의 호전을 우리의 개혁과 구조조정의 노력의 결과로 해석하려 해서는 안되며 이를 국제환경 변화가 우리 경제에 주는 절호의 구조조정 기간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 1년반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안고 있는 부실과 비효율의 늪은 아직 너무 깊으며 우리에게 유리한 환경은 결코 오래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의 금융사고에는 늘 붙어 다니는 표현이 있다.

그것은 '당초 예상보다 부실의 규모가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경제 구석구석의 실상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우리 스스로의 부실은 훨씬 깊고 널리 퍼져 있으며 정리해야 할 과제는 그 어떤 나라들보다 심각하다.

아시아 및 우리 경제회복에 필수적인 일본의 경기가 회복된다면 그것은 엔화의 약화와 더불어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졌으며 이는 다시 우리의 경쟁력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이제 세계경제는 어느 나라도 지구의 다른 한편에서 진행되는 경제현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우리 스스로도 자본시장 개방과 외환규제 철폐를 해오고 있지 않은가.

개방된 시장에서 국내 경제는 외부충격에 훨씬 취약할 수밖에 없고 종전의 관치금융과 폐쇄경제 하에서나 온전할 수 있었던 기업들의 고 (高) 부채구조로는 이제 도저히 우리 경제의 안전운행을 지탱할 수 없다.

기업.정부의 경영 관리방식이 크게 바뀌고 5대 재벌을 포함한 기업부채의 대폭적 출자전환을 통한 재무구조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지금과 같이 세계경제가 우리에게 주는 잠시의 숨 쉴 공간을 우리의 공간으로 확보하지 못하고 또다른 위기와 질식을 맞게 될 것이다.

주가지수 700 돌파.소비증가.성장률 예측 상향조정 - 이 모든 현상들이 주는 메시지는 바로 구조조정을 더욱 근본적으로 그리고 철저히 하라는 것외에 달리 해석돼서는 안된다.

조윤제 서강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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