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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영화판, 징하요 (27)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27) 나의 첫 우수영화

70년대는 한국영화의 '암흑기다.

박정희 군사정권하의 영화정책은 체제유지의 방편으로 한국영화를 육성하고 있었다.

그 방법의 하나로 실시한 제도가 연간 국산영화 4편 (또는 대종상 수상작 1편) 을 제작하면 외화수입쿼터 1편을 주는 보상제도였다.

외화를 들여오면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제작자에게는 엄청난 특혜나 다름없었다.

이때문에 당시 대부분의 제작자들은 한국영화를 잘 만들어 수지를 맞추려 하기보다는 저예산으로 의무편수를 채워 외화쿼터만 따내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제도 자체가 나빴던 것이 아니라 운영방식이 나빴던 것이다.

그러나 이게 때로 감독에게는 장점이 되곤 했다.

흥행에 대한 일차적인 부담에서 해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기간에 만들었던 작품은 문예물이나 계몽성 짙은 소재들이 대부분이었는 데 앞서말한 풍토들이 큰 역할을 했다.

"정직한 영화를 만들어보자. 나쁜 것은 나쁜 대로, 좋은 것은 좋은 대로 우리의 삶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보자. " 이를 위해 나는 내가 살아온 삶속에서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세계를 영화로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75년에 나온 '왜 그랬던가' 는 내 첫번째 우수영화다.

일제시대 변절자를 내세워 '인간의 조건' 에 대해 묻는 작품이었다.

허장강.박근형.양광남이 출연했다.

마영이라는 사람이 일본경찰의 밀정 노릇을 하는 등 친일행각을 벌이다 뉘우친다는 내용이다.

서기원의 원작을 읽을 때부터 나는 왜경의 끄나풀이 돼 살 수밖에 없는 주인공에 호기심을 느꼈다.

어렸을 때 체험했던 변절자에 대한 지독한 혐오감이 발동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찍으면서 나는 변절할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의 조건이라면 환경을 탓해야지 사람을 미워할 수야 없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곤 했다.

이 작품의 마지막 대목에는 이런 게 나온다.

마영의 아들 선근이 "늑대가 되기 위해 알래스카로 가겠다" 고 외치는 장면이다.

여기서 '알래스카' 는 고향 (자연) 을 의미했다.

애당초 이 영화의 타이틀은 '알래스카의 늑대' (원작 소설은 '마록열전 (馬鹿列傳)' ) 이었다.

바로 고향의 의미는 바로 이 늑대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다.

야성의 늑대는 아무리 인위적으로 키워져도 야성 (野性) 이 다시 살아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법. 그래서 늑대와 알래스카, 그리고 고향이 서로 어울리게 됐다.

당시엔 함경도를 알래스카로 부르곤 했는 데, 이때문에 정보부가 "북한으로 가자는 얘기냐" 며 트집을 잡았다.

다음 작품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75년) 은 월남 패망 직후에 만든 영화다.

때문에 간혹 '안보영화' 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나는 월망 패망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긴장, 그런 것을 영화속에 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도 그렇다고 전쟁의 기록도 아닌 일종이 피해의식이 이 영화를 만든 동인이었던 것같다.

정일몽 각본으로 최정훈.박지훈.채령이 출연했다.

공안부 검사 강문길은 가족과 함께 휴일을 맞아 야유회를 즐기던 중 끔찍한 사건을 목격한다.

근처 꽃동네에서 꼬마들이 녹슨 포탄을 주어 갖고 놀다가 이것이 폭발해 참변을 당하는 것. 이를 계기로 강문길이 전쟁의 참상을 몸소 체험한 지난날로 빨려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시기 이 작품말고도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몇편 더 있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보다 한해 앞서 나온 '울지 않으리' 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 역시 '증언' '아내들의 행진' 처럼 영화진흥공사가 제자한 영화였는 데, 이 작품에는 어린 주인공이 기관총을 쏘며 전쟁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이게 약간의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모습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냐" 는 물음이었다.

나는 그런 현실적인 의문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중요한 것은 전쟁에 이용당한 소년들이 정말 존재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에게 전쟁은 이데올로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글= 임권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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