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월요인터뷰] 박상천 법무부 장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참을 수 없는 장관의 진지함 - ' .박상천 (朴相千) 법무장관에 대한 검사들의 평가는 이렇다.

매사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朴장관은 요즘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심혈을 기울여온 국민인권위원회 설치를 놓고 재야단체들이 반발하고, 공직비리수사처에 대해서도 논란이 적지 않다.

국가보안법 개정문제.법조개혁 등 그의 앞에 놓인 과제도 산더미다.

朴장관을 지난 14일 과천 법무부장관실에서 만났다.

예정은 두 시간이었지만 朴장관은 "내 말 좀 들어보라" 며 30분 이상 더 붙들어뒀다.

[만난사람= 신성호 사회부 차장]

- 특별검사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질 않습니다. 朴장관 본인도 야당시절엔 특검제 도입에 목소리를 높였는데 이제 태도를 바꾼 것입니까.

"특검제를 요구하게 된 건 13대 국회때 검찰이 5공비리를 축소.은폐하는 걸 보고서였습니다. 거듭 요구해왔던 5.18과 12.12사건에 대한 수사가 축소.은폐될까봐 특검제를 요구했죠. 그러나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 당시 대통령을 모시고 미국에 갔을 때 그쪽 의원들과 학자.법무부 사람들을 만나보고 나서 '이건 (특별검사제) 해서는 안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명망있는 변호사 중에서 특별검사가 임명되는데 일단 사건을 맡으면 유죄를 입증하느냐 못하느냐에 자신의 명예가 걸리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수사 대상이 된 공직자와 특별검사 사이의 대결구도가 형성돼 정치게임이 되어버립니다.

혐의가 확정되기 전 언론에 모든 혐의내용이 공개되는가 하면, 수사기간이 몇년씩 걸려 경비도 엄청납니다. "

- 朴장관은 지난해 국회에서 현정부의 검찰은 편파수사를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때문에 특검제가 필요 없다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그러나 대전 법조비리 사건 수사 와중에 현직 고검장이 '정치검사 물러가라' 는 성명을 발표했고 평검사들이 집단 서명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이들의 주장과 요구가 현실을 잘못 이해한 겁니까.

"새정부 출범 이후 처음 치러진 6.4 지방선거때 여당쪽이 야당보다 두배반이나 많이 입건됐습니다. 하지만 안기부 (현 국정원)가 관련됐던 국회 529호실 사건 때는 안기부에 대한 수사보다 한나라당에 대한 수사속도가 빨라 내부적으로도 오해 소지가 있었습니다. 검사들의 집단서명은 전체 1천2백명 중 단지 60여명이 참여했고 그것도 준비과정에서 언론에 알려진 겁니다. 예비에 그쳤으니 예비음모입니다 (웃음) .검찰의 중립성은 완전하지 못하지만 강화되고 있습니다. "

- 공직비리수사처 신설은 사실상 대검 중앙수사부의 이름만 바꿔 특별검사제 요구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란 지적이 있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중립성 확보를 위해 책임자인 처장은 사실상 임기제를 도입하고 수사 예산도 연초에 미리 배정할 겁니다. 미국 연방수사국 (FBI) 도 법무부 산하의 한 국 (局) 이에요. 국장이 법무장관의 참모에 불과하지만 예산과 인사가 독립되니까 미 국민 사이에 독립기구로 인식될 정도입니다.

미국서도 특검제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 대안으로 우리의 공직비리수사처 같은 걸 설치하자는 안 (案) 이 있답니다.

공직비리수사처는 올해 중 설치를 목표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

- 한나라당 서상목 (徐相穆)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됐습니다. 현역의원이기도 한 朴장관은 국회의 부결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徐의원에 대한 혐의는 다른 공직자라면 당연히 구속될 사안입니다. 공범인 당시 국세청장도 이미 구속됐어요. 하지만 국회에서 부결된 이상 입법부의 의사를 존중해 새로운 범죄사실이 드러나지 않는한 불구속 기소하는 게 정도 (正道) 라고 봅니다."

- 국민인권위원회가 오는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출범합니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인권위를 국가기구가 아닌 특수법인으로 해 법무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하는데 이를 수정할 용의는 없는지요.

"인권위를 민간기구로 한 것은 집권자.권력기관의 인권침해에 대한 '민간감시' 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인권침해는 과거의 의문사 사건 등에서 보듯 집권세력에서 비롯됐습니다. 따라서 인권위를 공무원으로 구성할 경우 진정한 독립성을 기대할 수 없어요. 외국의 예를 봐도 민간기구로 설치된 영국.호주.뉴질랜드의 인권위는 가장 성공한 사례로, 수하르토 전 대통령에 의해 국가공무원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의 인권위는 어용기구화 한 예로 꼽힙니다.

또 인권위에 법인격을 부여했다고 해 법무부 산하기관이란 주장은 어이없는 것입니다. 법인격을 부여한 것은 인권위가 독자적인 권리 주체가 돼 독립성을 강화하고 독자적으로 소송도 하고 기부를 받아 기금 등 재산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유엔의 '국내인권기구설립권고안' 도 인권위에 법인격을 부여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

- 인권단체 등에선 시정명령권 부여 등 인권위의 권한 강화를 주장하는데요.

"인권위가 시정명령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국가 기능의 본질과 인권위의 성격에 관한 오해에서 나온 것입니다. 인권침해를 방지하는 것은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으로 국가의 기본적 임무에 속합니다. 생명권에 대한 침해가 살인죄에, 신체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불법 체포.감금죄에, 인격권에 대한 침해가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국가는 인권침해행위를 수사하며 이를 소추해 처벌하고 민사.행정적 구제를 위해 경찰.검찰.법원을 두고 있

고, 입법에 의한 인권침해를 시정하기 위해 헌법재판소를 설치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엔의 '국내 인권기구설립 권고안' 을 보면 이러한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보장에 '틈새' 나 '허점' 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국내 인권위를 만들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법원과 헌법재판소도 정부의 행정처분에 취소나 위헌 확인만 하지 적극적 시정지시를 못하는데 인권위가 수사기관의 인권침해행위는 물론 정부기관의 차별행위에 대해 시정명령을 하게 된다면 수사기능과 재판기능을 함께 갖는 권력기구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 경우 또 하나의 민간감시기구가 필요하게 됩니다. "

- 최근 법대 교수들이 세미나를 열어 로스쿨 제도의 도입을 주장했고 법조계는 반대입장입니다. 밥그릇 다툼이란 지적도 있는데 법무부는 어떤 입장입니까.

"법대 교육과 사법시험제도는 개선돼야 합니다. 법대 학생들이 학교는 안가고 시험 공부만 합니다. 세계화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법조인의 국제경쟁력이 강화돼야 합니다. 통상문제와 인권.반부패 등 국제기준에 대한 인식과 실력을 갖춰야 하는데 우린 그렇지 못해요. 사법시험에서 국제통상법 분야 등을 강화하고 영어를 필수과목으로 하는 등 다양한 개선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사법연수원 형태도 개선돼야 합니다. "

- 장관 취임 이후 국가보안법 개정문제에 대한 발언들을 보면 이를 고치고 싶은데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못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데….

"획기적으로 고칠 생각입니다. 현재의 국가보안법은 공산권에 대한 봉쇄와 고립정책 시대에 제정된 겁니다. 개방과 교류시대로 바뀌었는데도 국가보안법은 과거 구조를 그대로 갖고 있어요. 북한을 무조건 항구적 반국가 단체로 규정한 것이나 용어의 개념이 모호해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것 등이 문제입니다. 이미 여론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뒤 토론회를 거쳐 특별위원회가 구성되면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고 연내라도 가능할 겁니다. "

- 오는 8월이면 김태정 (金泰政) 검찰총장의 임기가 끝납니다. 수뇌진의 '대폭 물갈이' 설이 나돌고 차기 총장직을 놓고 벌써부터 맹렬한 로비가 펼쳐진다는 말도 나돕니다. 인사구상을 밝혀주시죠.

"총장이 (사법시험) 몇회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인사의 폭은 달라질 테니 아직 뭐라 말할수 없습니다. 또 대통령과 법무장관을 움직일 정도가 아니라면 그런 로비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란 점을 말해두겠습니다. "

- 1년2개월 가까이 법무행정을 총괄하면서 가장 보람있었던 일은 무엇이고 어려웠던 순간은 어느 때였는지요.

"신공안 개념을 정립해 사상전향제를 폐지한 일이나 불구속 수사 확대, 미결수 사복 착용과 수출중소기업지원변호사단 구성 등이 보람있었던 일입니다.

노동자 구속을 최소화하면서 산업평화를 지키는 게 제일 힘듭니다. "

◇ 박상천 장관은…

박상천 법무장관에게는 예외없이 '실세' 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는 야당시절은 물론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에도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수 있는 몇 안되는 각료로 꼽힌다.

그는 "문제의 본질을 따져보고 일단 판단이 서면 주저없이 밀고나간다" 고 말한다.

이 때문에 "너무 원칙에 얽매인다" 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61년 고시 13회에 합격한 뒤 판사.검사를 거쳐 88년 13대에 국회로 진출했고 그뒤 내리 지역구 3선을 했다.

평민당.신민당 대변인, 국민회의 원내총무를 역임했으며 97년 대선때에는 김대중 후보 방송선거대책단 단장을 맡았다.

부산 출신인 부인 김금자 (金琴子.52) 씨와 늦결혼을 해 1남2녀를 뒀으며 막내아들은 아직 고등학생이다.

▶38년 전남 고흥 (62) ▶광주고.서울대 법대 ▶광주지법 판사 ▶서울.부산.대구.제주지검 검사 ▶제13~15대 의원 (고흥) ▶평민당.신민당 대변인 ▶국민회의 원내총무 ▶47대 법무장관

정리 = 김종혁 기자 사진 = 조용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