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여왕방한 특별회견] 홍석현사장-블레어 英총리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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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토니 블레어는 세기말 유럽 정계의 풍운아다. 그리고 그가 지금 영국에서 받는 지지와, 유럽에서 누리는 인기와, 국제정치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을 보면 21세기의 첫 10년 또는 20년까지도 그는 세계사의 중심을 떠나지 않을것 같다.

토니 블레어는 미국의 클린턴과 같이 2차대전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신세대 지도자로 전혀 새로운 생각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국내문제와 세계문제에 접근한다. 좌파와 우파를 변증법적으로 극복하고 조화하고저 하는 그의 '제3의 길' 은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폭발적인 주목을 받는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의 전성시대를 맞은 유럽정치의 정점에 서서 클린턴과 함께 코소보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과감하게 신유고연방의 주권을 침범하는 군사행동에 나섰다. 블레어 다운 면모다.

그는 참으로 바쁜 사람이다. 코소보는 그를 더욱 바쁘게 만들었다. 코소보의 난리통에서도 총리관저인 런던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21세기의 가장 촉망받는 신세대 지도자를 아주 어렵사리 만나 그의 코스모폴리탄적인 비전과 현실적인 실천방도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홍석현 =나토 (북대서양조약기구) 연합군이 코소보에서 결코 포기할수

없는 목표는 무엇입니까.

토니 블레어 =나토의 목표는 아주 분명합니다. 그것은 신유고연방의 군대와

경찰이 코소보에서 철수하고, 국제평화감시군이 주둔한 가운데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안전하게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나토의 군사개입을 끝내는 절대적인 전제조건이죠.

홍 =나토의 공습으로 당장은 신유고연방에 의한 코소보 주민들의 학살과 추방을 중단시키는데 실패했습니다. 나토의 공습이 신유고연방의 대통령 밀로세비치의 태도를 바꾸는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블레어 =우리는 작전의 모든 세부사황과 성과를 계속 세밀하게 분석합니다. 나토의 공습강화로 신유고연방의 통신망과 보급물자와 군부대가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어요. 밀로세비치는 공습이 계속되는 한 점점 더 높은 댓가를 치뤄야 한다는걸 알게 될겁니다.

홍 =결국은 지상군을 투입해야 밀로세비치가 굴복하고 사태가 해결되는것

아닙니까.

블레어 =지상군을 투입하기로 결정한다고 해도 신유고연방군과의 전투에 필요한 규모의 군대를 모우는데는 몇주의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는 공중폭격을 계속한다는 입장을 지킬겁니다.

홍 =밀로세비치가 나토연합군의 공습을 얼마나 더 견디어낼수 있을까요.

블레어 =그건 밀로세비치에게 물어볼 일 같은데요. 좌우간 우리는 목표를 달성할때까지 공습을 계속할것입니다. 공습이 아닌 다른 방법은 밀로세비치의 인종청소가 성공하고 선량한 주민들이 고향집에서 추방당하는 사태를 용납하는 결과를 의미합니다. 한가지 분명히 지적할께 있어요.

유럽공동체 (EU) 각국에는 이미 옛 유고연방을 탈출한 피난민이 1백만명이나 되고, 신유고연방이 탄생한 이후의 피난민을 합치면 그숫자는 3백50만명이나 돼요. 보스니아에서는 우리가 개입하기전에 25만명이 학살당했습니다.

홍 =인권은 어떤 경우에도 주권 (主權)에 우선 합니까 아니면 인도주의적인 개입에도 한계가 있습니까.

블레어 =우리는 결과적으로 남의 나라의 국가주권을 침범하는 행동을 취할때는 대단히 신중해야 합니다. 나토가 제시한 랑부예 평화협정이 코소보가 신유고연방에 잔류하는 기본틀 안에서 사태를 해결하려고 하는것도 그래서입니다. 그러나 어떤 나라가 제나라 국민을 보호할 의무와는 반대되는 파괴와 학살정책을 쓴다면 그건 외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사태라고 봐요. 물론 그런 경우라고 해도 사사건건 개입한다는건 아닙니다. 전세계를 둘러보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 경우에도 우리가 개입하지 않았고 또 개입할수 없었던 사례가 있어요. 그러나 코소보는 유럽의 문턱에 위치하여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경우에 해당됩니다. 발칸반도의 세력균형이 깨어지는 것은 유럽에게는 위험한 사태입니다.

홍 =종교의 측면에서 보면 코소보사태는 이슬람과 동방정교회가 충돌하고

거기에 기독교가 개입했습니다. 일종의 문명의 충돌이라고 할수 있습니까.

블레어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과 야만의 충돌입니다. 무슬림이다, 동방정교도다, 또는 기독교다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홍 =나토가 기껏 인도주의적 동기에서 개입을 했는데 밀로세비치의 인종청소같은 잔악행위로 코소보 주민들의 상황이 더 나빠진데 대해서 정책적, 도덕적 딜레머를 느끼지 않습니까.

블레어 =정책적, 도덕적 딜레머입니다. 그런데 분명한게 있어요. 밀로세비치는 나토가 단 한발의 폭탄도 떨어뜨리기전에 인종청소를 계획한 것입니다.

작년에 30만명이 추방당하고 지난 여름 나토가 개입하기도 전에 20만명이 학살 당했습니다. 나토개입에 대항해서 밀로세비치가 행동을 강화한건 사실이지만 그의 잔학행위는 오랜 시간을 두고 계획된겁니다. 물론 우리는 그런 사태에 개입할때 민간인에 대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모든 노력을 합니다.

홍 =러시아가 나토에 계속 경고를 하고 있는데 러시아가 사태해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여지는 없습니까.

블레어 =러시아가 건설적인 역할을 할수 있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그래서 우리는 러시아와 대화의 체널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러시아와 싸울 처지가 아닙니다.

홍 =이제 코소보사태 아닌 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1997년 5월의 영국 총선거에서 노동당이 승리한 바로 다음날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는 사설에서 보수당의 존 메이저 총리는 패배를 했지만 마거릿 대처는 승리했다고 논평했습니다. 노동당의 블레어 총리가 보수당의 대처 전총리의 정책의 대부분을 계승하고 있다는 의미 같습니다. 블레어 총리는 대처의 '후계자' 입니까.

블레어 =그건 말도 안됩니다. 내가 처음부터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린다거나 해묵은 싸움을 다시 시작하는데는 관심이 없음을 분명히 한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나는 마거릿 대처와 보수당이 집권 18년 동안 한 일이 모두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입장도 밝혔어요. 그러나 우리가 정권을 인수했을 때의 영국을 보면 보수당의 정책이 영국이 안고있는 뿌리깊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실패한 정도가 아니라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켜 놓았다는걸 알수 있어요. 우리는 지금 보수당정권이 저지른 실책과 그들의 정책이 초래한 손실을 바로잡고 있는겁니다.

노동당이 집권을 하고 보니 권력은 중앙에 집중되어 있고, 다섯 가구가운데 한가구 꼴로 직장을 가진 사람이 없고, 주요 공공 서비스 부문에는 투자가 이루어진게 없고, 온나라에 불평등이 만연하고, 영국은 기술과 교육과 생산성에서 국제경쟁력을 잃고 있었어요.우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영국서는 처음으로 최저임금제를 도입하여 빈곤선에 머물던 임금을 올리고, 뉴딜 정책을 써서 젊은층의 장기 실업을 해결하고 있어요. 연금생활자들과 어린이들이 있는 가정에 보조금을 늘렸습니다.

보건과 교육같은 공공 서비스 부문에 4백억 파운드를 추가로 투자하고, 권력을 분산하고, 근무환경에 최소한의 수준을 설정했습니다. 보수. 우파에서는 이런 정책에 맹렬히 반대를 했어요. 노동당의 정책이 너무 우파적이라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노동당정부가 처음 2년 동안 이루어 놓은 업적을 못보는 사람들입니다.

홍 =노동당의 집권에 뒤이어 프랑스에서는 리오넬 조스펭의 사회당,독일에서는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사회민주당이 총선거에서 승리하여 유럽 공동체의 대부분이 사회민주당 천하가 된 느낌입니다. 냉전이 끝난 서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대거 권력에 복귀한 배경은 뭡니까. 유럽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겁니까.

블레어 =유럽의 정치지도는 분명히 바뀌었습니다. 유럽 공동체의 15개 회원국 가운데 13개국에서 중도좌파가 집권하고 있어요. 좌파와 우파의 낡은 교조주의적인 정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수 없고, 따라서 21세기를 위한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된 결과라고 봅니다.

국가가 모든걸 떠맡아야 한다는 좌파의 입장이나,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말아야 한다는 우파의 견해는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된다는 자각이죠. 계획경제는 기능을 잃고, 세상을 자유방임주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너무 많은 피해자를 냈다는데 눈을 뜬겁니다.

중도좌파의 정책은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제

사람들은 시장원리에만 맡길수 없는 보건과 복지와 교육같은 문제에선 정부가 일정한 역할을 해야하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공정한 경쟁을 위한 룰을 정하는 것이 한가지 예가 되겠습니다.

한편으로는 국민을 급격하고도 광범위한 변화에 내맡길수 없다는 생각과, 다른 한편으로는 신우파 (New right)의 노선은 가족과 공동체 의식을 해치고 있다는 생각이 유럽을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국가간의 상호의존도가 높기때문에 좋은 의미의 코스모폴리탄적, 국제주의적 정부가 필요하다는데 모두들 공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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