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계 감독 '정치탄압' 고발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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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반목과 살상을 되풀이하고 있는 유고의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 이들간의 화해를 위한 영화를 제작하는가 하면, 밀로셰비치 체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한 세르비아계인이 있어 화제를 끌고 있다.

주인공은 고르친 스토야노비치 (32) 라는 영화감독. 그가 2년전 제작한 '스즈메바치' 란 영화는 알바니아계 남성과 세르비아계 여성간의 비극적 사랑을 주제로 한 '코소보판 로미오와 줄리엣' . 이 영화는 스토야노비치 감독과 한 알바니아계 각본가가 시나리오를 공동집필하고 다수의 알바니아계 배우들이 출연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코소보 알바니아계 출신 살인 청부업자 미리안 (암호명 스즈메바치) 이 세르비아 여성 아드리아나와 베오그라드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뒤 알바니아계 범죄조직과 세르비아 경찰에 쫓겨 도피행각을 벌인다는 것. 영화에는 코소보에 돌아온 미리안이 세르비아 경찰로 변신, 동족을 탄압하는 동생과 갈등을 겪다 총격전을 벌이던 중 동생을 사살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당초 스토야노비치 감독은 정치와 관계없는 연애영화로 만들려 했으나 제작과정에서 탄압받는 알바니아계 주민의 참상을 목격하고 정치적 색채를 가미했다.

그는 제작이 끝난 뒤 "코소보는 이미 세르비아의 손을 떠났다" 며 "코소보 알바니아계는 자부심 강하고 매력적인 사람들로 전쟁을 원치 않는다" 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로부터 "이 영화가 알바니아계를 호의적으로 묘사했다" 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코소보 해방군 (KLA) 의 모험주의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대 (對) 코소보 정책도 분명한 오류라는 것. 스토야노비치는 각본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처음엔 무대연출가로 시작했지만 옛 유고 붕괴후 크로아티아 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예정된 살인' 으로 데뷔했다.

'스즈메바치' 는 그의 두번째 작품으로 유럽 영화계의 호평을 받았으며 이번 유고사태로 다시 한번 전세계의 조명을 받고 있다.

스토야노비치는 베오그라드 내에서 밀로셰비치 체제를 비판하는 몇 안되는 지식인 중 하나다.

최근 반체제 언론인이 피살되는 등 언론통제가 극에 달한 와중에서도 그의 비판은 멈추지 않는다.

그는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탄압은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 며 "나토 공습이 계속되는 한 나같은 반체제 인사들은 더욱 곤란한 입장에 처한다" 고 말했다.

나토의 공습이 오히려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강화해 권좌 강화에 부심하고 있는 밀로셰비치에게 좋은 선물이 되고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스토야노비치 감독은 "유고에 영화창작의 자유는 아직 존재한다" 며 다음 작품을 구상 중임을 시사했다.

그는 현재 유고 당국의 시퍼런 서슬과 나토의 공습이라는 이중의 적과 싸우고 있는 와중에도 코소보 사태 이후 연락이 끊긴 알바니아계 각본가 친구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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