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비서著 '카를 야스퍼스' 현실-철학관계 밝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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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존재와 불안' 으로 상징되는 실존철학은 1차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인 절망과 맞물리며 당대 철학의 주류로 올라섰다.

그 정점에 서 있었던 마르틴 하이데거 (1889~1976) .1927년 출간된 '존재와 시간' 에서 그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안하다' 며 '존재를 영원한 것으로 만들고 싶으나 그것은 헛된 노력일 뿐' 이다고 역설, 당시 사람들이 품었던 존재의 근원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이 같은 하이데거의 논리에 반론을 편 실존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 (1883~1969) .인간은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찾아서 살아가는 능동적인 존재요 곧 인간의 철학함이란 '자유로서의 존재' 그 자체라며 하이데거의 논리에 반대한다.

심지어 야스퍼스는 "하이데거는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고 폄하하면서. 독일 마인츠대 리하르트 비서 (철학) 교수의 '카를 야스퍼스' (정영도 외 옮김.문예출판사.1만3천원) 는 20세기 철학계의 큰 반향을 일으켰던 두 철학자의 논쟁을 바탕으로 철학자 야스퍼스를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비서 교수는 두 철학자의 논쟁을 옳고 그름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지는 않지만 야스퍼스 철학을 중심에 두고 그에 대한 의미부여를 높이고 있다.

'철학' 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야스퍼스와 '사유' 의 필요성을 강조한 하이데거는 서로 철학에 깊은 존경심을 표한 사이로 '동시대의 유일한 일류 철학자' 혹은 '특별한 존경심을 표하는 철학자' 라고 서로 일컬었을 정도로 각별한 관계였다.

하지만 '존재' 에 대한 근원적인 사고의 차이로 그들의 철학적 사변을 한 데 모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1933년 하이데거가 나치 지배하에서 프라이부르크대 총장직을 맡아 유태인 아내를 둔 야스퍼스와는 감정의 골까지 깊어지며 철학논쟁은 심도를 더한다.

앞서 야스퍼스가 하이데거에게 '자유에 대한 무지' 를 통박했을 때 하이데거는 "자유가 인간의 속성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자유의 소유물이다" 라는 특징적인 명제를 제기하며 야스퍼스와의 대립을 분명히 한다.

이런 하이데거 철학에 야스퍼스가 던지는 메시지는 강하다.

"철학은 적어도 오늘날 물러서서는 안된다" 라는 것. 철학의 현실참여를 강조하는 이 말은 철학이 현실과 거리가 멀고 또한 전문가들만의 전유물이라면 오늘날 철학은 어떤 임무도 가질 수 없다는 의미를 가진다.

'성실과 사랑' 은 인간적 삶과 가치의 새로운 창조와 건설적인 기반이 된다는 야스퍼스. 저자는 "철학은 인간의 소외된 현실 생활을 책임져야 하며 나아가서 불안한 이들의 유일한 가능성이어야 한다" 란 야스퍼스의 말에서 철학의 비젼을 보려는 듯 하다.

이화여대 신옥희 (철학) 교수는 "야스퍼스의 철학은 타자를 포용하는 철학이자 문화와 문화의 통합을 가능케하는 열려진 철학으로 통일과 화합을 지향해야 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며 오늘날의 의미를 강조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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