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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건축을 위하여] '기술만능.거대주의는 가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영화 '토털 리콜' 에 그려진 첨단의 미래 주택. 리모컨 작동만으로 요리가 나오고 벽면에 부착된 대형 스크린에선 아름다운 전원 풍경과 새 소리가 펼쳐진다.

행복한 미래여. 그러나 또다른 영화 '블레이드 러너' 가 그리는 미래의 도시와 건축은 암울하기만 하다.

인간들은 선실같이 비좁은 철제 상자 안에 갇혀 살며, 공해로 찌든 도시는 온통 회색 안개로 가득하다.

두 영화 모두 미래의 건축환경은 과학기술의 문제로 귀결된다.

지난 세기의 건축 상황을 돌이켜보면 이런 기술결정론적 예측이 틀린 것은 아니다.

참으로 무던히도 지어댔다.

5층짜리 반도호텔이 최고였던 서울에 30~40층의 고층 빌딩이 가득 찼고, 방 안의 온도와 조명이 자동으로 조절되는, 이른바 인텔리전트 빌딩은 이미 기본이다.

불과 50년 만의 변화다.

온갖 하이테크로 무장한 빛나는 건물들이 이제 서울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서울의 건축사 (史) 는 거대주의와 기술지향주의로 점철된 '실험의 역사' 였다.

조국 근대화의 상징으로 세워진 세운상가는 'O양의 비디오' 나 암거래하는 도심의 슬럼으로, 기술한국의 자랑인 63빌딩은 교통 혼잡과 에너지 낭비의 주범으로 바뀌었다. 세운상가나 63빌딩의 건축계획은 완벽했다.

실제로 내부 환경도 편리하고 안락하다.

단지 이 건물들이 서게 됨으로써 변하게 될 주변에 대한 고려가 없었을 뿐이다.

그러나 결과는 엄청났다.

건물 하나하나가 번쩍이면 도시는 저절로 빛날 줄 알았다.

그러나 서울은 누가 봐도 혼잡하고 살기 힘든 도시가 됐다.

이제야 반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근대 건축과 도시의 발전이란 결국 환경 파괴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보존과 재활용의 건축이 아쉽다.

개별 건물 한 동보다 도시 전체의 환경을 개선하는 건축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과 대안은 공허하게 메아리친다.

미래 건축의 대안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움직임을 국내 건축계에서 찾아보긴 어렵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든데 미래는 무슨 미래냐고. 나는 여기서 그저 작은 예를 하나 들려 한다.

베르나르 츄미가 설계한 파리의 라빌레트 공원. 여기에는 거대한 건물도 광장도 없다.

다만 일정한 간격으로 분산된 작은 정자들이 전부일 뿐. 공원의 전체적 조직과 이용자들의 편의를 고려한 결과다.

이 공원의 주제는 실상 '과학' 이지만 시설물과 공간은 '예술' 이다.

과학기술은 인간을 위한 도구일 뿐, 궁극적인 행복을 주는 건 휴식과 예술임을 깨닫게 해주는 곳이다.

미래의 건축은 예정된 것이 아니라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는 대상이다.

건축이 기술의 노예가 될 수도 있지만, 파괴돼가는 환경을 복원하고 행복한 도시를 만드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우리 건축의 기술이 부족해서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까. 기술을 통제하고 점검할 윤리의식의 부재, 건축정신의 결여가 빚은 비극 아니었던가.

새 천년을 맞는 건축은 후손들의 몫도, 외국 건축가들의 책임도 아니다.

바로 현재 우리 건축인들의 윤리와 정신이 미래 건축을 장미빛으로도 잿빛으로도 만드는 것이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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