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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지역 패거리 정치 이제 그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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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상목 (徐相穆)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놓고 1년을 끌어 온 '방탄국회' 는 이제 의원들의 '특권확인국회' 로 종결됐다.

의원들의 동료애와 인정은 인위적 정당의 장벽을 초월하는 수준임이 실증됐다.

국회가 뭐하는 곳인가.

이 나라 법을 만드는 기관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하며 범죄자는 마땅히 처벌해야 한다는 것은 법치국가의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 법의 기본원칙을 무너뜨린 뒤, 양심과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 쾌거라고 자축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교도소 담벽 위를 걷는다는 정치인의 심리구조에서 나오는 양심과 정의란 실상 의원으로서의 패거리 보호본능에 다름 아니다.

법의 지성소 (至聖所) 여야 할 국회는 패거리의 성역 (聖域) 으로, 삼한 시대의 소도 (蘇塗) 로 변질됐다.

그같은 정치적 패거리주의의 정점이 지역감정을 이용한 지역분열이다.

전직 대통령의 고향행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부터 든다.

전국적 지도자임을 포기한 정치인이 지역맹주로의 권토중래를 위해 고향행이 종종 악용됐기 때문이다.

고향은 좋은 곳이며, 고향사람은 쉽게 정든다.

그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고향사람을 앞에 두고 '우리가 남이가' '누구는 무조건 안돼' 하는 것과 향토사랑은 차원이 다르다.

하나의 국민을 '우리' 와 '남' 으로 갈라, 우리는 무조건 편들고 남은 무조건 안된다는 분열구조를 확대재생산해 온 것이 지난 몇십년의 정치다.

선거때가 아니면 그래도 지역감정 해소책도 나오고 지역감정 걱정하는 목소리도 힘을 얻는다.

그런데 선거만 닥치면 한표가 아쉬운 정치인들은 몰표를 보장하는 지역감정이란 악마적 주술을 다시 불러낸다.

"지역감정 좀 유발해야돼" 하는 '초원복국집' 적 심리가 노골적으로 표출된다.

한 지역의 집단감정이 다른 지역의 반대감정을 자극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지역감정 유발의 일차적 책임은 물론 정치인이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지역감정이란 주술을 효험있게 만드는 한심한 의식수준이다.

고향사람이라면 덮어놓고 밀어주는 선거행태 앞에서 경제파탄의 책임, 군사쿠데타에 대한 책임, 숱한 공약의 번복에 대한 책임도 실종됐다.

선거는 추장이나 족장을 뽑는 의식으로 전락했다.

끼리끼리의 연줄공동체는 부정부패의 풍성한 토양을 제공했고, 잘못된 인사 관행의 바탕이 됐다.

그러다 보니 전문성을 위해 피나게 연마해야 할 무한경쟁시대의 아까운 시간을 우리는 질펀한 술자리에서 연줄망 강화에 소진하고 있다.

지역감정을 유발하고 거기에 편승하는 정치인 - 지역민의 커넥션 속에서 국민국가의 모습은 간데없다.

고려 - 조선의 1천년 통일국가는 해방후 남북조로 쪼개지고, 다시 남한지역은 소3국시대로 분열되다 신라지역이 북부신라와 남쪽가야로 분열됐다.

성골이니 진골이니 하는 골품제 용어도 실감있게 통용된다.

이러한 시대역진의 과정에서 대한민국 (大韓民國) 은 소한부족연맹체 (小韓部族聯盟體) 처럼 운용되고 있다.

이 나라에 산다고 그저 국민인 것은 아니다.

족장이나 추장을 중심으로 덮어놓고 뭉치는 자들을 우리는 부족민 혹은 토인 (土人) 으로 부른다.

지역이익과 국가이익을 꼼꼼히 따지고 두 이익을 조화시키는 정치가를 선별해 내는 안목, 국민국가를 부족연맹체로 분열시켜 족장자리를 노리는 동물적 기도를 거부하는 슬기가 없인 국민국가의 국민이라 자처할 수 없다.

지역감정 논의에서 꼭 따르는 질문이 있다.

당신은 어디 출신이냐는 것이다.

질문 자체가 지역 편가르기의 저의를 담고 있기에 사실 불쾌하다.

그렇다고 내 고향이 폄하될 수는 없기에 김소월의 시구를 빌려 '영남의 진주는 자라온 내고향' 이라고 답하곤 한다.

진주에서 10년, 부산에서 10년을 살았기에 속칭 PK라 '규정' 당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임진왜란때 동래산성에서 싸운 송상현 부사가 어디 영남만을 구하기 위해 순절했던가.

처절한 진주성 싸움에서 산화한 호남 의병장 김천일과 전북 장수 출신의 논개는 영남의 진주이자 온 나라의 꽃이다.

충청인 이순신은 통영 앞바다에서 망해가는 나라를 건져냈다.

이들의 숭고한 삶을 떠올리면 그처럼 찬란한 나의 고향이건만, 동물적 패거리의식과 지역분열을 외치는 소리 앞에서 내 고향 PK는 부끄럽고 부끄럽다.

더 이상 정치인의 분열놀음에 장단맞추고 춤추지 말자. 각성된 국민 없인 나라도 없다.

한인섭 서울대법대교수 형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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