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현대전자 주가조작 수사의뢰 방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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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금융감독원은 현대그룹의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이 현대전자의 주가를 조작한 혐의를 잡고 검찰에 수사의뢰키로 했다.

금융감독원 임용웅 (林勇雄) 부원장보는 8일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이 지난해 5~11월 현대전자 주가를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며 "이를 주도한 현대중공업.현대상선과 이 회사 대표이사를 검찰에 수사의뢰하고 이를 중개한 현대증권은 행정조치를 내릴 방침" 이라고 밝혔다 (본지 4월 8일자 31면) .

林부원장보는 또 "지난해 8월 증권거래소가 현대중공업의 현대전자 주가조작 의혹을 보고해왔으나 조사인력 부족으로 지난 2월 조사에 착수했다" 며 "오는 14일 심사조정위원회를 거쳐 21일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처벌 수위를 결정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현대측은 "주가조작 의혹은 이미 지난해 조사받고 혐의가 없는 것으로 처리됐던 사안" 이라며 "계열사간 자전 (自轉) 거래는 흔한 일인데 현대전자만 문제 삼는 이유를 모르겠다" 고 주장했다.

◇ 주가조작 의혹 = 지난해 5월 1만4천원대이던 현대전자 주가가 유상증자 청약일인 6월 8, 9일께는 3만원대로 치솟았다.

금감원의 조사 결과 이 당시 주가 상승은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이 현대전자 주식을 주고 받거나 증시에서 꾸준히 매집해 끌어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예컨대 폐장 직전 1만4천원대에서 매도호가가 형성돼 있을 때 현대상선이 현대중공업으로부터 1만6천원의 사자주문을 내 종가를 끌어올리는 등의 수법이 주로 활용됐다.

이를 위해 현대중공업은 2천억원, 현대상선은 2백억원을 동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상선은 6월까지 가담하다 이후 중단했으나 현대중공업은 11월까지 계속 주가조작에 나선 것으로 조사됐다.

현대측이 이같이 주가조작에 나선 이유는 우선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지난해 6월과 12월 두 차례 실시한 유상증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다 지난해 9월 이후 시작된 반도체 빅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포석일 수도 있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상선의 법인과 대표이사에 대한 처벌 수위는 증권선물위가 열려봐야 알지만 증거가 충분한 만큼 가장 강도 높은 검찰 고발로 결론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주가조작으로 피해를 본 소액투자자도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낼 수 있어 집단소송사태가 예상되고 있다.

◇ 현대측 입장 = 현대측은 "반도체 빅딜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주가를 조작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현대는 반도체빅딜의 경영주체 선정은 국제평가기관인 아서D리틀 (ADL) 의 평가에 따른 것이며, 평가항목에도 주가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대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 및 현대투자신탁증권이 현대전자의 주식을 취득한 시점은 반도체 빅딜 논의가 시작된 98년 9월 이전인 98년 5월말부터 7월초까지라는 점을 강조하며 3개사의 현대전자 주식 취득은 빅딜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현대관계자는 "당시 현대전자의 주식이 저평가된 상태였기 때문에 3사가 투자차원에서 현대전자의 주식을 취득한 것" 이라고 설명하고 현대전자 주식을 사들인 계열사들이 이를 팔지 않고 그대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계열사간 자전 (自轉) 거래 형식의 주가조작은 없었다고 밝혔다.

◇ 금감원 조치 = 주가조작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상당부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현대중공업과 상선이 보유 현대전자 주식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으로 거래된 사례가 많아 주가조작을 입증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는 입장이다.

정경민.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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