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독서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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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요즘처럼 햇살이 맑은 날에 바라보는 한강은 참 아름답다. 특히 한남대교 인근은 예부터 그 풍광이 빼어난 곳으로 이름이 높다. 강 남쪽으로는 조선조의 최고 권신 한명회가 지었다는 압구정(狎鷗亭)이 있었고 그 북안(北岸)에는 남산의 끝자락인 매바위, 응봉(鷹峰)이 있다.

응봉 아래는 중랑천이 한강으로 유입하는 두물포(豆毛浦)다. 두 물줄기가 만나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 특히 이곳의 물결은 잔잔하기가 호수와 같다고 해서 ‘동호(東湖)’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해발 170m 정도의 아담한 봉우리인 응봉의 남쪽 기슭에 원래 있었던 정자를 허물고 지은 것이 조선 때의 독서당(讀書堂)이다.

그 처음은 배움에 적극적이었던 호학(好學)의 군주, 세종대왕에서 비롯한다. 세종은 당시 신진 관료들에게 특별 휴가를 준다. 아무 일에 상관치 말고 책이나 열심히 읽으라는 뜻에서다. 이른바 휴가를 내려 공부에 전념토록 한다는 뜻의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다.

처음에는 특별한 장소를 두지 않고 문을 닫은 절집이나 자택에서 책을 읽도록 했다. 그러나 공부에 몰두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성종(成宗) 때에 이르러 지금의 용산쪽 한강 가에 남호(南湖) 독서당을 차렸다. 응봉 기슭의 독서당은 성종 때의 독서당이 사화(士禍)로 인해 없어진 뒤 중종(中宗) 때 다시 지은 것이다.

독서당을 ‘책 읽는 집’이라고 번역해야 옳을까. 그러나 단순한 책 읽기는 아닌 듯싶다. 옛 선비들의 공부는 몸을 가다듬고(修身), 뜻을 옳게 간직해(誠意), 마음을 바로잡는(正心) 데 있었다. 배움의 궁극이다. 정치에 종사하는 군주와 선비들의 마음가짐을 설명한 율곡 이이의 『동호문답(東湖問答)』이 이 매바위 아래의 독서당에서 나온 게 그 좋은 예다.

잔잔한 물결의 한강변 남호와 동호, 맑고 고운 경치 속에서 정치와 사람됨의 근본을 밝히자고 했던 것이 이 독서당을 세운 조선조 할아버지들의 취지일 것이다. 마침 서울 성동구가 지난 6월에 독서당 터를 복원한 데 이어 인근 650m 길이의 독서당길을 새로 단장할 계획이다.

진지한 배움이 날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요즘의 분위기에서는 정말 반기고 싶은 복원이다. 특히 당략과 술수만이 판을 치는 정치권에서는 이번 독서당의 복원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조선의 위정자들이 세워 밝히고자 했던 근본을 말이다.

유광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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