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수전 서랜든, 폭압경찰 징계 온몸 투쟁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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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 영화배우의 정의사회를 향한 열정이 무자비한 공권력의 남용을 꺾었다.

사형제도를 비판한 영화 '데드맨 워킹' 으로 96년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수전 서랜든 (53) .

그가 차가운 거리로 뛰어나온 것은 지난 2월초 아마도우 디알로 (22) 라는 아프리카 이민 출신 흑인청년이 경찰에 무참하게 사살된 사건 때문. 디알로는 늦은 밤 행상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아파트 현관에서 그를 강간범으로 오인한 백인 경관 4명으로부터 41발의 총탄세례를 맞고 숨졌다.

당시 디알로는 흉기를 소지하지도 않았고 전과도 없었다.

뉴욕 경찰청 앞에서는 흑인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연일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나중에는 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 (NAACP) 까지 가세했다.

제2의 로드니 킹 사태가 우려될 정도로 사태는 인종대립 양상으로 치달았다.

줄리아니 시장의 소극적 대처는 이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안전한 뉴욕' 을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줄리아니는 오히려 뉴욕경찰의 사기저하를 걱정하고 있었다.

분노한 서랜든은 오지 데이비스.루비 디 등 동료배우들을 선동 (?) 해 함께 뉴욕 경찰청 앞으로 달려가 시위대에 합류했다.

"정의가 없으면 화해도 없다" 는 구호를 외치며 스크럼을 짜고 정문출입을 가로막아 피의 경찰관들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불복종 시위' 를 주도했다.

그는 지난달말 흑인 인권 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 데이비드 딘킨스 전 뉴욕시장 등과 함께 뉴욕 경찰청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다 공무집행방해로 체포되기도 했다.

체포자수가 1천2백명을 돌파하는 등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빌 클린턴 대통령도 라디오 연설을 통해 "뉴욕경찰이 직권남용을 했다" 며 편을 들고 나섰다.

결국 줄리아니 시장은 지난달 31일 문제의 경찰관 4명을 살인혐의로 기소하고 소수인종 출신 경관의 충원 등 경찰개혁안을 내놓았다.

인종 구성에 비해 백인 경관이 많은 점도 시인했고, 소수인종 출신 경관의 동등한 승진기회 부여 및 전진배치도 약속했다.

사실상 백기를 든 것. 서랜든 등 시위 주도자들은 "폭압적인 경찰행정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며 승리선언을 했다.

'지성미와 섹시함을 겸비한 드문 배우' 라는 평가를 받는 서랜든은 '델마와 루이스' '로렌조 오일' 등에서는 주관을 갖고 삶과 투쟁하는 강인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두번의 이혼 끝에 지난 80년 자신 만큼 개성있는 12세 연하의 배우 겸 감독인 팀 로빈스와 결혼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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