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탁 트이는 무공해 바닷가-삼척 용화리 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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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아이고, 그렇게 먼 서울서 뭣하러 예까지 왔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용화리 김덕수 (63) 이장. 굳이 그의 말을 옮기지 않아도 먼길이다. 강원도라지만 강릉보다 경북 울진에 더 가깝다.

영동고속도로에서 동해고속도로로 들어서자 처음 눈에 들어온 팻말이 '정동진 3백m. ' 용화까지는 아직 60㎞. 차라리 유명한 정동진으로 갈까 망설여진다. 하지만 이내 1시간을 더 달린다.

마침내 먼길 끝에 만난 용화리 해변. 태백산맥을 넘어 만난 용화리 해변은 마음속 응어리를 한순간에 날려보낸다.

하얀 거품을 이고 끝없이 밀려드는 푸르고 드넓은 바다. 흰 거품이 낼름거리다가는 곧 사그라드는 희고 고운 모래밭. 그것은 가깝다는 정동진의 유혹을 뿌리친 보람이었다.

3대째 용화리에서 살았다는 김씨도 처음엔 겸손해 하더니 "마을 어귀 말굽재에서 바라본 용화리 해변은 동해안에서 가장 아름답다" 며 은근히 자랑을 늘어놨다.

"새벽 2시에 일어나 무작정 달려왔어요. " 백사장에 만난 서울 상계동 김지영 (23.여) 씨. 사람이 북적대고 상혼에 물든 정동진이 싫어 그녀 역시 '먼길' 을 택했다. 그녀는 용화리만은 아름답고 순수하게 남기를 바라며 정동진처럼 매스컴에 알려지는 것을 오히려 꺼렸다.

혼자서든 아니면 연인과 함께 용화리 해변을 찾는 사람들. 그들은 1㎞나 되는 해변을 걷거나 백사장에 하릴없이 낙서를 하다가는 모래밭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수평선. 조그만 어선만이 실처럼 가는 선을 수평선 따라 그으며 지나갈 뿐 허허하다. 그 허허함에서 시작한 해풍은 파도와 모래먼지를 일으키고 해변마을을 지나 솔숲을 훑고 간다. 바람은 이미 한겨울의 칼끝 매서움을 잃은지 오래다.

용화리 해변은 그 바람 한가운데 있다. 어떤 이들은 바람부는 용화리 해변에서 추억을 만들고 어떤 이들은 그 추억을 지운다. 정동진이 그러하듯 용화리 해변도 한여름철 해수욕만을 위한 곳이거나 낭만을 위해 찾는 겨울바다만은 아니다.

잠이 오지 않는 늦은 밤에도 불현듯 바다가 그리운 사람이라면 훌쩍 찾는 곳이 바로 용화리 해변이다. 이곳에 있는 1백여개의 민박업소 요금만 보아도 그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한여름 성수기 요금이 3만5천원 (1실, 3~4명 숙박가능) 이면 비수기에는 으레 2만원쯤 하는 법인데 용화리 해변은 지금도 3만원정도다.

아름다운 용화리 해변 덕을 톡톡히 보는 곳이 또 있다. 용화리 해변 남쪽 1.5㎞ 장호항. 1백여척의 어선이 드나드는 이 조그만 항구에도 사철 사람이 꾄다. 펄펄 뛰는 생선과 어부들의 분주한 삶이 있는 곳. 일과 사람에 부대낀 도시인들은 시큼한 초고추장에 싱싱한 회를 한입 우겨넣고는 '그래도 살만한 세상' 이라고 생각한다.

욕심난 사람들은 유람선 (낚싯배) 를 타고 바다로 5㎞쯤 나가 용이 살았다는 동굴 (용굴) 을 만나기도 한다. 용화 (龍化) 라는 이름이 비롯된 곳이다. 울적한 마음에 용화리를 찾은 사람들은 그렇게 위로받고는 다시 용꿈을 꾸는지도 모른다.

이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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