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외국기업 "우리도 뭉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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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국에서 활동 중인 34개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최근 한국연구개발중심제약산업협회 (KRPIA) 란 기구를 만들었다. 제약협회가 있긴 하지만 한국 업체 위주로 운영돼 자신들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외국 제약업체 M사 관계자는 "가격.지적 재산권.신규 제품허가 등 수입 의약품에 대한 차별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번번이 좌절돼 별도 협회를 만들었다" 고 말했다.

'차별대우 더 이상 못참는다 - ' .한국 진출 외국 기업들의 단체행동이 가시화되고 있다. 외국인 투자에 대한 제도.인식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여전하다고 판단,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한국 진출 외국기업이 크게 늘어난 것도 이런 변화를 가능케 해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외국기업인 사이에서는 '우리도 변해야 한다' 는 자성론 (自省論) 도 함께 고개를 들고 있다.

전경련을 비롯한 한국 기업.단체들도 이런 움직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외국인 기업의 협회 가입을 유도하고 차별관행을 고치도록 하는 등 적극적인 '포용 정책' 을 쓰고 있다.

◇ 외국업체 움직임 = 한국수입자동차협회는 오는 5월 자동차공업협회가 개최하는 서울모터쇼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참여 문제를 놓고 지난 해부터 줄다리기를 벌이다가 최근 '불참' 을 공식 확정한 것. 때문에 2년에 한번씩 열리는 서울모터쇼가 올해는 '반쪽 행사' 가 되게 됐다.

이들의 주장은 자동차공업협회가 수입차 업체에는 한국 업체에 비해 2배 이상의 참가료를 달러로 요구하면서도 부스는 비인기지역인 2층 전시장에 일괄 배정하는 등 '차별대우' 를 했다는 것.

수입차협회 관계자는 "우리가 비회원사란 점을 감안해도 세계 유수의 모터쇼에서 수입차와 국산차를 차별하는 경우는 없다" 며 "그동안은 울며 겨자먹기로 행사에 참여했지만 이번엔 시정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참여를 포기했다" 고 말했다.

지난 해에는 외국 담배회사들이 담배인삼공사가 판매업자 지정권을 빌미로 소매상들에게 외산담배를 못팔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며 공사를 공정위에 제소, 시정명령과 함께 일간지에 사과광고를 받아내기도 했다.

수입화장품 업계를 비롯한 다른 업종에서도 한국 기업 중심의 협회 운영에 대해 불만을 본격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자 전윤철 (田允喆)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유럽연합 (EU) 상의 행사에 참석,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단합 등의 행위를 철저히 막도록 하겠다" 며 달래기도 했다.

◇ 확산되는 자성론 = 외국기업 사이에서는 '따돌림' 이나 '차별 관행' 이 한국의 기업.경영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제프리 존스 주한 미상의 (AMCHAM) 회장은 "철저히 자사 이익만 추구하고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법적으로 대응하려는 외국기업들의 행태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는 생각이 주한 외국업체 사이에서 높아지고 있다" 고 밝혔다.

한 주한 외국회사 경영자는 "한국에서의 사업을 위해서는 로비가 불가피한 데도 본사에서 이를 금지하고 있어 사실상 언로가 막힌 상황이라 대안을 강구중" 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와 관련, 제프리 회장은 조만간 수입자동차협회 등 AMCHAM 회원사들에 '한국적 경영과 시장경쟁의 특성' 을 설명하면서 한국 시장 공략 전략을 바꿀 것을 당부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뉴스킨.한국암웨이.한국허벌라이프 등 외국기업 역시 이미지 개선작업에 전에 없이 신경을 쓰고 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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