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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발칸] 김석환특파원 코소보 난민촌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발칸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20세기의 마지막 비극은 끝가는 곳을 모르고 있다.

전쟁은 격화되고 세르비아계 보안군과 경찰의 총칼에 떼밀려 코소보를 떠나는 난민 수십만명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중앙일보는 김석환 특파원을 난민들이 몰려들고 있는 코소보와 마케도니아의 접경지대 블라체로 급파했다.

[블라체 (마케도니아 - 코소보 국경) =김석환 특파원] "들판에서 잠을 자며 열흘 걸려 가까스로 이곳에 도착했지만 텐트도 모자라 땅바닥에서 또 이틀밤을 지새웠습니다. "

5일 아침 (현지시간) 마케도니아 국경 블라체 임시 난민수용소. 부슬비를 맞으며 철조망 밖을 바라보던 베림 메하메티 (26) 는 기자가 다가가자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 건지, 고향엔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건지, 나는 지금 생지옥에 갇혀있는 셈" 이라고 힘없이 한탄했다.

그치는 듯하다간 다시 뿌리는 봄비가 며칠째 난민수용소를 적셔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고 있다며 '과연 신 (神) 은 있는가' 라고 자조했다.

코소보쪽 산벼랑을 등지고 임시 가설한 텐트촌에 몰려든 난민은 이날 현재 8만명. 서방측이 긴급 지원해 세워진 텐트 3천개로는 턱없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

난민들이 담요.비닐과 막대기로 얼기설기 엮은 간이텐트와 뒤섞여 마치 거대한 난장 (亂場) 을 방불케 했다.

멀리서 보면 풍물시장이라도 들어선 것 같다.

담요를 둘러쓰고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노인들, 코트로 어린아이를 뒤집어 씌운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네,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여기저기 쏘다니는 남자들. 땅바닥은 온통 질퍽거렸다.

미국이 긴급 공수했다는 2천개의 텐트는 4일 아침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이날 밤까지도 오지 않았다.

간이텐트조차 만들지 못한 난민들은 진흙탕에 비닐을 깔고 그 위에서 부둥켜안은 채 밤을 새웠다고 한다.

"그 중엔 배가 부른 임신부도 있었어요. " 메하메티는 치를 떨었다.

기자의 수용소 출입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철조망 밖에서 바라다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백지장 같은 안색에 초점 없는 퀭한 눈동자들이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구호본부의 트럭 한대가 텐트촌 옆을 지나며 난민들에게 담요를 던져줬다.

트럭 주변은 순식간에 수라장으로 변했다.

구호대원들이 던지는 담요를 서로 차지하려고 고함이 터져나오고 주먹질이 오갔다.

담요는 결국 힘센 사람의 차지. 보호자 없는 여자와 어린이들은 비와 추위를 피할 방법이 없다.

탈진과 고열 끝에 사망하거나 실신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한 자원봉사 의료대원은 "3일 밤에만 11명의 난민이 숨졌다" 고 말했다.

병자와 그 가족들로 의료구호 텐트 앞은 인산인해다.

코소보의 조그만 마을 미트로비차 출신인 메하메티는 피난도중 가족 3명과 헤어졌다.

트랙터를 타고 먼저 떠난 칠십 노모와 큰 형 (32) , 막내 여동생 (11) .남자형제 4명은 트랙터에 자리가 없어 도보로 뒤를 따라왔으나 앞선 가족을 찾을 길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유고공습 초기에만 해도 난민들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마케도니아는 수도 스코페 시내의 초등학교 등에 난민을 분산 수용한 뒤 2~3일 후 알바니아계 마케도니아인들의 가정이나 종교기관 등으로 보냈다.

그러나 현재 마케도니아 정부는 몰려드는 난민들에게 냉담하다.

국민 대다수가 친세르비아 분위기에 젖어있는데다 소수인 알바니아계도 더 이상 난민들을 수용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마케도니아 정부는 철조망을 쳐놓은 수용소에서 2중 3중의 경비를 세워 엄격하게 난민들을 감시하고 있다.

가난했지만 코소보에서 염소를 키우고 농사를 지으면서 행복하게 살던 메하메티의 절망은 점차 출구마저 없어지고 있다.

난민들은 5일 아침에도 속속 몰려들고 있다.

대부분 지친 모습으로 걸어서 국경을 통과해 수용소에 들어왔으나 콩나물 시루 같은 기차를 타고 코소보로부터 마케도니아에 온 난민들도 있다.

트랙터나 달구지를 타고온 사람도 적지 않다.

어린이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려 울음마저 잃은 표정이다.

이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것이 바로 웃음이었음을 깨닫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철조망 사이로 난민들이 전하는 인종청소의 실상은 처참했다.

"복면을 하고 쳐들어온 세르비아 경찰과 군인들이 잠자던 우리들을 군화발로 마구 차고 때리며 집밖으로 쫓아냈다. 새벽까지 벌벌 떨며 외양간에 갇혀 있다 마을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입고 있던 옷가지만 걸친 채 1주일을 걸어 이곳에 도착했다. "

병색이 완연한 아내와 함께 있던 30대 남자는 자신이 '청소 당하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코소보 주도 프리슈티나에 살던 네르메딘 알리메하니 (42) 의 집에도 세르비아 사람들이 밀어닥쳤다.

그 역시 하룻밤 사이에 10년을 노력해 장만한 집을 잃었다.

5일을 걸은 뒤 때론 버스를 얻어타고, 때론 달구지를 타고 프리슈티나에서 양코비치를 거쳐 마케도니아 국경에 도착했다.

저녁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차가운 산악지방의 험준한 산길을 지나 국경으로 탈출하느라고 탈진 (脫盡) 한 상태였다.

그는 블라체의 임시 난민캠프를 거쳐 지금은 스코페시 외각 알바니아계 집단거주지에 설치해놓은 라두샤의 난민 전용 수용소에 있다.

이곳 역시 마케도니아 정부가 식수와 빵 한 조각씩을 나눠주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철조망을 쳐놓은 곳이다.

하지만 그는 부인 엘레나 (35).큰 아들 로니 (15).작은 아들 코람 (14) , 그리고 막내딸 하나 (4)가 흩어지지 않고 같이 지내는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체육관에 모이라고 해 알바니아계 사람들이 한자리 모였다 집으로 돌아가 보니 집과 가재도구가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50대 남자) , "죽이지 않는 대가로 돈을 뺐었다. " (60대 남자) 몰려드는 난민들은 마케도니아 정부로 하여금 '통제불가' 의 걱정을 낳게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뒤늦게 블라체에 도착한 난민들의 수속은 매우 까다로워졌다.

난민들 가운데는 "차라리 코소보에 남아 세르비아인들에게 죽는 게 나았다" 고 비탄해 하거나 "20시간을 줄서있었는데 아직 등록도 못했다" 고 불평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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