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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오바마의 손을 잡을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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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이란은 1979년 혁명 이래 맞이한 가장 중요한 역사적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다. 바로 ‘오바마 기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란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손을 내밀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이란의 통치자들은 이를 큰 위험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미국과의 긴장이 줄어드는 걸 두려워한다. 이란 정권은 내심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미국 내 강경파를 반겼었다. 이란 체제를 유지하고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란의 통치자들은 경제·기술의 발전은 원하면서도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법치주의는 외면하고 있다. 그들은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났던 시민혁명을 두려워한다. 지난 6월 부정 선거 뒤의 시위와 억압적 통치는 이란의 파워 엘리트 사이에 나라의 앞날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차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방과 고립, 통합과 사회 불안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그중 어느 쪽을 택하든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 될 것이다.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슬람 혁명’이라 규정했던 79년 혁명은 실제론 외세를 배척하는 민족주의 혁명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란은 오바마의 제안을 받아들여 미국과의 화해를 기반으로 독립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 또한 국제 정치와 지역 정치에서의 위상도 높일 수 있다.

이란 혁명은 최초의 이슬람 혁명이 아니라 제3세계의 마지막 반제국주의 혁명이었다. 역사의 시작이 아니라 끝이었던 것이다. 반제국주의 혁명의 첫 성공 사례는 49년 중국에서 나왔다. 이후 아시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에서 많은 나라가 뒤를 따랐다. 이 혁명은 서구에 반대하는 경향을 띠었고,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혁명 중 상당수는 세계 시장과의 제한적 교류와 정부 통제라는 소비에트 경제 모델을 택했다. 그 결과 큰 대가를 치렀다. 이란의 통치자들은 그들의 과거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소련은 경제 때문에 무너졌다. 미사일이나 핵무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중국·러시아·베트남 등의 통치자들은 그루지야·우크라이나·레바논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시민혁명을 피하기 위해 경제·사회적 자유화, 세계 시장과의 통합을 선택했다. 인도·브라질·터키와 비교해 보면 이란의 현실은 더욱 답답해 보인다. 이란의 주요 경쟁자는 이스라엘이나 아랍권의 이웃 나라가 아니라 터키다. 이란이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고 핵무기를 개발할수록 안보는 더욱 취약해진다. 반면 터키는 성공적이고 포괄적인 현대화 과정을 밟고 있다. 그 결과 이란이 아니라 터키가 21세기 중동 지역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이번 가을엔 중대한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이란은 점점 핵무기 생산의 금지선에 근접하고 있다. 이란의 통치자들은 오바마의 손을 잡을지, 새로운 갈등의 국면을 맞이할지 결정해야 한다. 역사 책이 그 결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
정리=이상언 기자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