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벤트리, 신소재 개발…세계시장장악 부푼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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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미국의 '3M' 은 부엌 수세미.스카치 테이프에서부터 반도체 주변 소재 (素材)에 이르기까지 6만여 가지에 이르는 제품을 만드는 다국적기업이다.

이 회사는 스스로 '만물박사' 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고 웬만한 남의 기술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이같이 콧대 높은 3M이 최근 한 국내 벤처기업에 '구애 (求愛)' 를 했다.

독자 기술로 유리 김서림 방지제를 개발한 벤트리㈜가 그 주인공. 97년 창업한 이 소기업은 종업원이 25명에 불과하지만 최근 3M과 기술정보 제공 및 제품개발에 관한 의향서를 교환, 업계를 놀라게 했다.

벤트리가 개발한 소재는 '유기 초친수성 (超親水性) 고분자' 라는 물질. 쉽게 말하면 '물에 녹지 않는 비누' 로 김서림은 물론 물방울이나 분진 등을 차단하는 효과를 지닌 신물질이다.

이행우 (42) 사장은 "기존의 김서림 방지제는 방지효과가 오래 가지 못하고 제품형태도 단순했지만 우리 제품은 효과가 반영구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제품으로 만들 수 있다" 고 설명했다.

벤트리의 신물질은 욕실거울.자동차유리.안경.건물유리.도로표지판.광학렌즈.군사장비 등 생활소품에서 첨단 우주산업에 이르기까지 용도가 무한하다.

김서림 방지 이외에도 세정.광택.물방울 제거.정전기 방지 등 부수 기능이 뛰어나고, 제품의 형태 역시 세척분무기.왁스.완제품 코팅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는 것.

이 기술은 지난해 선진 각국에 특허출원됐고 올들어 본격 양산체제를 갖춤에 따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 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시장규모는 2천5백억원 정도. 하지만 세계시장은 연간 10조여원에 이르고 있어 내수보다 수출에 대한 기대가 훨씬 더 크다.

특히 벤트리 기술을 쓰면 기존 생산시설로도 응용제품 생산이 가능해 제품원가를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는 것. 이 때문에 해외에서 기술제휴 제의가 몰리고 있다.

3M에 앞서 미국 굴지의 플라스틱 제조업체 '벙커' 가 지난 1월 국제경쟁입찰에서 자국의 세계적 화학회사 다우코닝 대신 무명벤처 벤트리를 파트너로 선정했고 오는 8월부터 김서림 방지필름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달에는 미국.캐나다 유명 백화점들과 4백만달러어치의 김서림 방지필름 공급 계약을 맺었고 일본 토토.미국 크라이슬러 등 세계적 제조업체들과도 상담 중이다.

국내에서는 삼공물산이 방독면 안면유리를 일본제에서 벤트리 제품으로 대체했고, 신라.워커힐 등 국내 특급호텔 욕실에도 이미 벤트리의 김서림 방지제가 코팅된 거울이 설치돼 호평을 받고 있다.

새한.SKC 같은 대기업도 소기업인 벤트리의 '하청' 을 받아 김서림 방지필름을 생산할 정도. 이에 따라 지난해 7억8천만원에 불과했던 이 회사 매출은 올해 1백5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2001년 매출목표는 1천억원.

벤트리는 회사 설립 때부터 기술력을 높게 평가받았다. 신생 벤처로는 이례적으로 30억원에 달하는 자본금으로 출발한게 그 증거다. 경기도 용인에 연구소 겸 김서림 방지제 원액 양산시설을 갖췄고 직원의 40%인 10명이 연구.개발에만 전념하는 석.박사 연구요원들이다.

李사장은 "유능한 인재를 모으고 한 분야의 연구에만 수년간 전념할 수 있도록 한 게 좋은 성과를 낸 것 같다" 고 말했다. 그는 고려대 화학과를 나와 91년 아이오와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IBM.한화종합화학 등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꿈의 소재' 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벤처기업을 차렸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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