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고강도 발언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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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가 5대 그룹 구조조정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동안 빅딜 (대기업간 사업교환) 등 5대 그룹들의 구조조정 작업을 직.간접으로 챙기면서도 공식적인 '개입선언' 만은 자제해왔던 정부가 자세를 바꾼 것이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29일 금융감독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의 국정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시종일관 '5대 그룹의 보다 강도높은 개혁' 을 강조했다.

5대 그룹 구조조정은 재계와 채권금융기관이 협의를 통해 '자율적' 으로 해나간다는 원칙엔 변함이 없으나 계속 자율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할 경우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 고 金대통령은 밝혔다.

金대통령의 이같은 의지를 읽은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정부와 5대 재벌.채권단이 맺은 재무개선약정 이행실적을 점검, 미진한 그룹에 대해서는 오는 4월 집중적으로 부당 내부거래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특히 금융기관을 낀 부당 지원행위에 대해서는 올해 초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확보한 계좌추적권을 발동해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고강도 대책도 덧붙였다.

金대통령은 이날 금감위에서도 "장부상으로만 빚을 줄이는 자산재평가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며 "외자유치.자산매각 등을 통해 연내 부채비율 2백% 달성 목표를 꼭 지키도록 하라" 고 주문했다.

금감위와 공정위, 정부가 가진 두개의 칼을 모두 동원해서라도 5대 재벌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처럼 대통령이 직접 나서 5대 그룹 구조조정을 챙기기로 한 것은 우선 지난해 기업.금융구조조정 중 5대 그룹 부문이 가장 미흡했다는 지적 때문이다.

자동차를 포함한 8대 업종 빅딜을 재계가 지난해 자율협의했지만 반도체.자동차 등 핵심업종에 대한 처리는 해당그룹간 이견으로 지금까지도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5대 그룹 구조조정 여부를 한국의 신인도를 재는 잣대로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로선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정부는 하반기 실업문제가 가시화하고 정치일정이 본격화하기 전에 5대 그룹 문제를 매듭짓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특히 최근 정부조직개편이 '용두사미' 로 끝났다는 평가를 받는 등 집권 2년을 맞아 정권의 개혁의지가 퇴색한 것 아니냐는 사회 일각의 의혹을 불식하려는 뜻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이처럼 5대 재벌 구조조정에 '개입불사' 방침을 밝힘에 따라 5대 그

룹은 빅딜 등 현안에 더욱 큰 압박을 받게될 전망이다.

5대 그룹이 金대통령의 '채찍' 에 어떻게 반응할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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