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인터뷰] 빅터 리핏 리버사이드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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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제2창사 기념으로 세계석학.지도자로부터 새로운 전망을 듣는 '밀레니엄 인터뷰' 세번째로 빅터 리핏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경제학) 교수를 만났다.

중국등 아시아 문제의 대표적 전문가로 꼽히는 그로부터 자본주의의 전망과 새로운 발전전략을 들어 보았다.

[만난사람= 유종일 KDI 국제대학원 교수]

- 한국은 경제적 위기를 맞아 기존의 국가중심 발전전략을 수정해야 할 단계에 와 있습니다. 새로운 국가의 역할은.

"기술의 발전과 세계화의 추세로 국가의 역할이 과거처럼 막대하기는 힘듭니다. 조그만 창고에서 몇몇 젊은 친구들이 시작한 벤처산업을 정부가 찾아 지원하기는 힘들죠. 컴퓨터 소프트웨어 산업은 과거 정부의 직접적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제철소. 조선소와는 다르죠. 대신 정부는 이들 산업의 발전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대만 정부가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해 소규모 정보기술업체들을 지원한 것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

- 결국 정부의 역할도 그 나라의 발전수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인데.

"동시에 세계적 차원의 변화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일본에 이어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같은 나라에 수출을 많이 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시장은 제한돼 있습니다. 지금 어떤 나라가 수출위주의 성장전략을 추구할 경우 성공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죠. "

- 일본의 경우 변화에 적응하고 있습니까.

"아직 새로운 환경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골적인 부정.부패를 찾기는 힘듭니다만 상당한 전근대적 부패구조가 남아 있습니다. 예컨대 기업가들 사이에는 아직 관료들의 가이드라인을 기다리는 심리가 남아 있습니다. 관료들이 퇴직해 자신이 가이드하던 기업의 간부가 되고, 남은 관료들은 그 기업을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결정합니다. 이런 유착구조 속에서 국가적 목표보다는 집단의 이익이 우선될 수밖에 없습니다. "

- 그렇지만 일본은 발전을 거듭해 왔잖습니까.

"과거에는 그같은 구조가 급속성장에 효율적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그같은 구조는 지나친 보호주의와 국내산업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게 되고, 현재 일본경제의 어려움도 그 결과라고 봅니다. "

- 한국은 어떻습니까. 일본과 유사한 구조인데요.

"일본과 같은 방식을 취해 왔습니다. 기업들이 정부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 도덕적 해이 (解弛) 와 경제위기를 불러왔습니다. 문제는 이제 어떤 식으로 바꿔야 하며, 정부가 그같은 변화에 적응할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예를 들면 기술의 발전은 벤처기업의 창의성에서 비롯됐습니다.

미국에는 이들 벤처기업가들이 활동하기 좋은 여건과 제도가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역할은 이들처럼 창의성을 가진 개인들에게 자본이 주어질 수 있는 여건과 제도를 만드는 일입니다.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은 금물입니다. "

-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부감시가 너무 축소된 것이 경제위기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복합적인 원인이 있습니다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그간 한국의 부채비율이 너무 높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급속한 성장의 시대에는 빚이 많은 것이 유리합니다. 그러나 성장이 둔화되거나 멈출 경우 빚을 갚을 수 없게 되고, 경제위기가 불가피하죠. "

- 어떤 해결책이 가능할까요.

"일본이 받아들이지 않은 방법인데, 시장을 개방하고 국제경쟁을 장려하는 방법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은 수입과 개방이 균형을 이루는 정상적인 경제구조 없이 성장만 계속 추구해와 오늘의 어려움을 초래했습니다. "

- 이론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와 발전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한 나라가 민주화될수록 발전이라는 하나의 정책목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노동시간 단축, 환경보호, 개인의 자유 등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결국 경제발전이 발전주의적 국가전략을 수정하게 만드는 셈이죠. "

-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라지만 여전히 국가주도적 발전을 계속하고 있지 않습니까.

"상호간에 작동하는 제도들을 전체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어요. 일본은 개인을 희생하면서 고성장을 추진해 왔지만 고용구조.교육체계.가족제도 등 사회제도가 문제점을 보완해 왔기에 오랫동안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죠. 그러나 이제 일본이나 한국이나 모두 종신고용을 보장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현재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과거 제도에 균열이 생긴 셈이죠. 개혁이 불가피하게 됐으며, 그 성공 여부는 기득권자들의 저항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

- 개혁이 위기극복의 관건이란 의미인데, 한국의 개혁에 대한 평가는.

"한국은 위기에 잘 대처해가고 있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산업구조재편과 다운사이징이 더욱 과감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기업이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할 수 있도록 실업보험과 같은 사회안전망 구축도 시급합니다. "

- 앞으로도 자본주의체제가 계속될까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만 자본주의는 이제 중간쯤에 들어섰다고 봅니다.

발전속도가 가속도를 감안한다 해도 앞으로 1백년 이상 존속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러나 우려스런 점은 두 가지 심각한 내적 모순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환경입니다. 2300년이 되면 바다는 아무것도 살지 않는 사해 (死海)가 될 것이며 사람들은 살인적인 햇빛을 피해 지하나 밤에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환경에 사람들이 얼마나 잘 적응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 문제입니다.

지금 심각한 불평등을 향한 거대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스톡옵션 (주식매입 선택권) 같은 보수가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수입면에서 엄청난 불평등을 초래할 것입니다.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지 걱정입니다. "

정리 =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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