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끼리 편가르기 걱정스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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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올해 법원에 한 차례 태풍이 지나갔다.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관여 논란이 불거진 데 이어 전국 법원에서 판사 회의가 잇따라 열렸다. 당시 법원행정처장으로 ‘소방수’ 역할을 했던 김용담(62) 대법관과 7일 단독 인터뷰를 했다. 김 대법관은 최장 법관 근무 기록(37년5개월)을 남기고 11일 퇴임한다. 그는 “판사들 사이에 소통이 부족하고 때로는 편가르기를 하는 일도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재판관들이 해야 할 일은 어느 한쪽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3월 신 대법관의 재판 관여 의혹에 대한 조사결과가 나온 뒤 당시 일부 판사는 사실상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했는데.

“헌법에 나와 있는 법관의 신분 보장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입고 있는 갑옷이다. 이런 원칙을 스스로 깨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판사들에게 계속 얘기했다.”

-사법 파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판사들이 집단적으로 분노를 표출할 때는 그 방법이나 대상, 정도에 대해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1971년의 사법파동이 정권의 외압에 대한 판사들의 저항이었다면 88년, 93년, 2003년의 집단적 의사표시는 성격이 다르다.”

-성격이 다르다는 의미는.

“시기, 방법, 내용의 적정성에 대해 의문이 있다. 세 차례는 모두 정권이 바뀐 직후에 정권이 거는 개혁 드라이브에 사법부 내부의 일부가 조응한 것이란 공통점이 있다. 또 사람을 갈아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도 같았다. 개혁은 제도를 고치는 것이다. 사람을 바꾸려고 여론 조성을 하는 것이 아니다.”

-2003년 대법관 제청 자문회의에서 김 대법관 등 3명이 대법관 후보로 제시되자 강금실 법무부 장관 등이 중도 퇴장하는 일이 있었는데.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법원이 모멸당한, 말할 수 없는 수모를 느꼈다. 대법원장뿐 아니라 법원에 대해 조금의 존경심도 없는 행동이다. 나는 그 사람들이 크게 반성하고 지금이라도 잘못을 고백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당시 판사들이 ‘서열 중심의 대법관 제청’이라며 연판장을 돌리기도 했다.

“그들이 개인적 결점과 성향을 들어 반대했더라면, 정치권에서 사법부를 몰아칠 때가 아니고 다른 때에 사법개혁을 주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후배 법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즘은 법관들 사이에 소통이 부족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일에 소홀한 것 같다. 때로는 편가르기를 하는 일도 있는 듯해 걱정스럽다. 재판관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니며 누구의 편이 되어서는 재판자로서 설 수 없다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할 것이다.”

-편 가르기와 관련해 진보 성향의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를 문제 삼는 시각이 있다.

“학술 모임일 뿐인데 외부에서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적인 사고로 들여다보고 폐쇄성이 두드러지면서 과장된 측면이 있다. 다만 학술모임답게 회원 명단과 연구회 사이트를 공개하는 등 활동을 공개적으로 하면 오해가 불식될 것으로 본다.”

-최근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법과 질서를 외치는 사람들과 정의의 이름으로 도발하는 사람들이 대립하는 양상이다. 이럴 때일수록 양쪽 주장에 귀를 열고 지혜로운 해결책이 뭔지 찾는 것이 중요하다. 미리 결론을 내려서 단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실을 보려고 했던 로마법의 정신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사법제도 개편에 대해선.

“대법원이 한 해에 3만 건을 처리해야 하는 상고심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부터 고민해야 한다. 또 중장기적 차원에서 법원 구조에서 인사제도에 이르기까지 백지 상태에서 다시 그려보는 작업이 시급하다.”

-퇴임 소감은.

“행복했던 것 같다. 퇴임 후에는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1년간 연수를 할 계획이다.”

글=권석천·박유미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김용담 대법관=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1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72년 춘천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 광주고법원장 등을 거쳤다. 2003년 대법관으로 임명됐으며 지난해 1월부터 법원행정처장으로 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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