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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기 왕위전 도전기 2국' 이창호, 유혹을 거부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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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38기 왕위전 도전기 2국
[제9보 (151~165)]
黑.이세돌 9단 白.이창호 9단

광풍은 지나갔다. 돌부처 이창호의 불 같은 전면 공격과 용사 이세돌의 가슴 아픈 굴복을 뒤로한 채 바둑판 위에도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생각하면 예기치 않은 일은 수시로 일어난다. 그토록 뜨거운 이창호9단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후퇴를 모르던 이세돌이 무릎을 꿇은 것 역시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 열정과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세돌9단이 159로 응수를 물어왔다. 평범한 한 수지만 마지막 승부수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검토실에선 고분고분 받아주면 백이 걸려든다고 한다. 상변 백△ 두 점이 크게 떨어져 나가며 사태가 급변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가장 냉정한 응수는 '참고도' 백1이었다. 이렇게 하면 상변과 좌변을 나누어 지킬 수 있고 흑의 마지막 도발을 무산시킬 수 있다고 한다. '참고도'를 주장하는 검토실의 프로들은 무엇보다도 백5의 선수를 가치있게 여기고 있다(이 선수 한방은 얼마나 달콤하며 따끔하면서도 맛좋은 수인가!).

하지만 이창호는 묵묵히 160으로 받아 걸려든다고 경고했던 그 코스로 그냥 간다. 그리하여 165가 놓이자 상변 백△ 두 점이 고스란히 상대의 수중으로 떨어져나간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검토실의 분석자들은 경악한다.

이창호가 '참고도'의 수순을 모를 리 없다. '참고도'백5의 맛좋은 한 수를 두고싶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이창호는 프로라면 누구도 거부하기 힘든 그 한 수의 유혹을 못 본 체 했다. 그는 유혹 뒤에 숨은 실낱같은 위험의 가능성마저 피한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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