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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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호 34면

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1N1)의 확산 속도가 무섭다. 지난 4월 첫 환자가 발병한 이후 이렇다 할 위력을 보이지 않던 신종 플루는 말복이 지나며 더위가 한풀 꺾이기 시작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맹렬하게 세를 넓혀 가고 있다. 기존의 감기 및 독감 바이러스들이 찬바람이 불면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다는 오랜 경험상, 다가올 가을과 겨울이 두렵기까지 하다. 이런 두려움은 최근 들어 신종 플루로 인한 국내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신종 플루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억누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종 플루의 사망률은 계절성 독감의 사망률과 비슷한데도 현재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이 문제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사망률은 낮은 편이다. 하지만 국민보다 앞서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에서 이런 말을 먼저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신종 플루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 속에는 정부가 국민이 왜 이번 사태를 두려워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실 많은 국민이 신종 플루를 두려워하는 것은 질병 그 자체의 독성보다는 일상적인 생활의 붕괴에서 오는 공포가 더 크다. 대부분의 사람은 잠자리에 들 때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독감에 걸렸다고 하면 그를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독감으로 사람들이 죽어 간다면 어떨까? 일상의 붕괴는 그 무엇보다 두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독감은 호흡기로 전염되는 질병이므로 인간이 숨 쉬는 이상은 근본적으로 피할 수 없는 질병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하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수치상의 근거를 들어 신종 플루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생된 신종 플루의 사망자는 모두 네 명으로 계절성 독감의 사망률인 0.1% 수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독감이란 전염력이 강한 질환이다. 모집단이 크면 사망률이 낮아도 사망자 수는 적지 않을 수 있다. 덧붙여 신종 플루로 인한 사망자 집단의 특성 역시 공포를 가중시키는 원인이 된다. 사람의 목숨 값은 모두 같지만 특정 인구집단의 죽음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어린아이나 임신부의 죽음이 그러하다. 미국에서 지난 4~6월의 신종 플루 환자를 조사한 결과 전체 사망률은 0.2%로 낮은 편이었지만 임산부의 경우 34명의 환자 중 6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임신부들만 따져 보면 사망률이 18%가 넘는 것이다. 이는 임신 기간 중에는 면역 기능이 떨어지기 마련이어서 신종 플루에 감염되기 쉽고, 서로 다른 두 생명체가 한 몸에 들어 있다는 임신부의 몸 상태는 신종 플루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를 유도하기 쉽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고대하고 있는 신종 플루 백신의 최우선 접종군이 임신부인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원래 두려움은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 진화된 감정이다. 고양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린 생쥐도, 고양이 털에서 나는 냄새를 두려워한다. 생쥐의 이런 본능적인 공포는 고양이를 눈으로 보기 전에, 냄새만 맡아도 도망가게 함으로써 지구상에서 생쥐라는 종이 멸종하지 않도록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처럼 위험에 대한 지각과 공포는 장기적으로는 종의 생존에 도움을 주는 행동이다. 국민이 지금 느끼는 공포는 살아남기 위한 생명체의 본능에 가깝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런 공포를 느끼지 말라고, 혹은 조금만 느끼라고 부추기는 게 아니라 냄새를 폴폴 피우는 대상이 고양이인지 고양이 털 뭉치인지를 살피고 이에 대응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아 주는 것이다. 백신의 개발, 타미플루 및 리렌자 확보, 빠른 진단과 체계적인 거점 병원 관리 등을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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