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의 임무, 홍콩 뛰어넘을 국제금융센터가 되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0호 22면

엑스포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지난달 27일 나팔 모양의 친환경 구조물을 지나고 있다. [블룸버그뉴스]

상하이의 명문대학인 상하이 자오퉁(交通)대학에 올가을 학기 ‘상하이고급금융학원(SAIF)’이라는 MBA 스쿨이 새로 등장했다. 금융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코스다. SAIF가 주목을 끈 이유는 ‘시립(市立)’이기 때문이다. 시 정부가 3억2000만 위안(약 592억원)을 투자했다. 개소식에는 한정(韓正)시장 등 고위 간부들이 대거 참석했다. 그는 축사를 통해 “국가가 상하이에 부여한 중대한 임무를 수행해야 할 과제가 여러분에게 주어졌다”고 말했다. ‘임무’라는 말에 유독 힘이 들어갔다.

중국 경제의 심장

‘상하이의 임무’는 무엇일까. 학생들은 금방 알아차렸다. 중국 국무원(중앙정부)이 지난 4월 말 발표한 ‘상하이 국제 금융·해운센터 추진에 관한 의견’이 답이다. 2020년까지 상하이를 ‘선진 제조업을 바탕으로 한 국제 금융·물류 허브로 육성한다’는 게 이 ‘의견’의 뼈대다. 현지 언론들은 ‘향후 10년 안에 상하이를 뉴욕과 견줄 수 있는 국제 금융도시로 키우라는 중앙정부의 명령이 상하이에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금융시티’로 성장하려면 가장 절실한 게 바로 인재다. 시 정부가 막대한 돈을 투자해 자오퉁대학에 국제금융 MBA 코스를 설립한 이유다.

‘제조업을 바탕으로 한 금융·물류 허브 구축’을 내건 상하이의 목표는 세계 제6대 메가시티(mega city)다. 상하이는 이 지역 16개 도시로 구성된 창장삼각주(長江三角州)의 핵심이다. 뉴욕·런던·도쿄·파리 등 거대 도시와 경쟁할 도시군을 상하이 지역에 형성하겠다는 취지다. 이들 16개 도시는 지금 3시간 생활권으로 묶이고 있다. 지난해 상하이~닝보를 연결하는 항저우(杭州)대교가 개통되면서 6시간 걸리던 거리가 3시간 이내로 단축됐다. 상하이~항저우~샤오싱(紹興)~닝보 등으로 연결되는 항저우만(灣) 주변 도시가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인 것이다.

“도로망뿐이 아닙니다. 인재·상품·서비스의 이동을 가로막는 도시 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무역·금융·물류 중심지인 상하이는 쑤저우·항저우·난징 등 제조업이 발달된 배후 도시들을 바탕으로 뉴욕·도쿄·파리 등과 견줄 수 있는 국제도시로 성장할 것입니다.” 상하이시 정부 정책고문으로 활동 중인 화민(華民)푸단(復旦)대 교수의 설명이다.

핵심은 이 거대 도시에 어떤 산업을 키우느냐다. 상하이 주변에는 요즘 반도체·컴퓨터·통신·디지털가전 등 각 분야의 세계적인 기업이 몰려들고 있다. 상하이에서 자동차로 1시간 반 정도 떨어져 있는 ‘쑤저우공업원구(蘇州工業園區)’. 싱가포르 공업단지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입주 외국업체 수만 1000개를 넘는다. 이 중 정보기술(IT) 업체가 절반을 넘는다. 삼성반도체와 삼성전자 노트북 공장도 진출해 있다.

쑤저우에서 다시 차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우시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일본의 미쓰비시·히타치·소니, 미국의 GE· 코닥, 독일의 바이엘·보쉬, 프랑스의 미쉐린 등 다국적 기업의 공장들이 잇따라 펼쳐진다. 개발구 관리위 관계자는 “상하이에서 시작된 IT 물결이 쿤산·쑤저우를 거쳐 우시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웃 도시 난징도 상황은 비슷했다. LG전자·샤프 등이 LCD 모니터를 생산하면서 난징은 이 분야의 대표적인 산업단지로 각광받고 있다. 상하이에서 난징에 이르는 양쯔강 주변에 거대한 ‘IT 클러스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부품·소재산업도 라인업되고 있다. 상하이의 자동차·철강, 난징의 석유화학, 닝보의 조선, 샤오싱의 섬유 등 제조업이 버티고 있다. 이런 산업기반 위에다 금융·물류 허브 기능을 더하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뜻이다. 첫 단계는 금융시장 정비다. 상하이증시를 중심으로 원자재, 외환, 금리·환율 파생상품 등 다양한 금융시장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계획이다. 인민폐(人民幣)로 거래되는 금융상품 종합세트’를 상하이에 구축하겠다는 뜻이다. 최종 목적은 인민폐 국제화다. 이를 위해 상하이에 인민폐 국제결제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중국은 이미 상하이를 인민폐 자유거래 지역으로 선정해 홍콩과의 무역거래에서 인민폐로 결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하이의 금융산업 지위는 ‘화둥(華東)지역의 금융센터’였다. 국제금융센터의 지위는 여전히 홍콩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중국 관리들도 ‘상하이가 홍콩을 뛰어넘어 중국을 대표하는 금융중심지로 부각되고 있다’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인민폐 국제화가 얼마나 빨리 진행되느냐에 따라 상하이가 홍콩을 추월하는 속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상하이의 금융 실력은 아직 뉴욕·런던 등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금리자율화 정도가 낮아 금융상품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고, 각종 규제로 글로벌 유동자금을 끌어들이기에도 역부족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쑨젠리(孫堅立) 푸단대 교수는 “자금 이동의 국경을 과감하게 허무는 것 같은 혁신적인 금융개혁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상하이가 미래 10년 프로젝트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내년 5월 열릴 엑스포는 그래서 더욱 의미가 크다. 상하이는 지금 ‘도시 전체가 건설공사 중(Shanghai under construction)’이랄 정도로 엑스포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개도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이번 상하이 엑스포는 관람객 약 7000만 명(연인원)을 목표로 뛰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회를 위해 약 37억5000만 달러를 투입했다. 엑스포는 상하이라는 ‘세계 도시’의 등장을 알리는 거대한 이벤트가 될 것이다. 그 내용은 아시아 최대 산업클러스터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