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래 39명, 평균 재임 1년 남짓 … 실세 총리 드물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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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카드’를 뽑는 데 지출한 정치적 비용은 작지 않았다. 넉 달이란 진통의 시간과 자유선진당과의 갈등. 여기에 국회 인준이란 험로도 남아 있다. 과거 JP는 국회 인준을 받지 못해 8개월간 서리 딱지를 떼지 못했다. 장대환·장상 지명자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했다. “도대체 대한민국 총리가 뭐기에”라는 생각까지 들 법하다.

역대 최장수 총리는 6년7개월간 재직한 정일권이다. 그런 그가 집권 공화당 정구영 의장에게 이런 하소연을 했다. “말이 국무총리이지 내가 무슨 총리입니까. 이런 로봇 총리는 할 생각이 없어요.” 현실은 30년 전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의 반문이다. “앞으로 넉 달 동안 예전 같은 총리가 없다고 칩시다. 국정에 무슨 지장이 있을는지.”

총리 제도는 건국 당시 대통령 권력에 대한 ‘수직적 견제장치’로 탄생했다. 법적으론 위상이 막강하다. 총리는 비상 시 최고권력의 승계자로 내각을 통할하고, 국무위원 임명제청권·해임건의권을 갖는다고 돼 있다. 그러나 강력한 총리란 제도적으로만 존재해 왔다. 인사권과 예산권을 갖고 있지 않은 총리가 국정을 ‘통할’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통령과 총리의 직무구분도 명확지 않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한국 총리는 결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관리의 한 명이었다”고 말했다. 역할이 강화되면 자연스레 청와대의 견제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건 전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시절 국회 시정연설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청와대 비서들의 견제 탓이었다. 국무총리실에서 15년간 18명의 총리를 보필한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기억이다. “어떤 총리는 청와대 부속실 직원에게까지 명절 선물을 보냈다. 청와대에서 전화가 오면 ‘예, 각하’하면서 몸까지 굽실대 직원들이 민망해하기도 했다.”

총리 제도를 무력화시킨 것은 무엇보다 역대 대통령 자신들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국무총리를 원하지 않고 있으며 의원들은 이에 반대할 것이오. 그러나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해 다만 대통령을 보좌하는 의미에서의 권한 없는 총리가 있을 것이오.” 이승만 대통령이 정치고문인 올리버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그래서 역대 총리들은 정치적 기반이 없고 무색무취한 인사가 주로 기용됐다. 39명(정운찬 후보자는 40번째)의 역대 총리 가운데 이북(12명) 출신이 가장 많고, 학자나 관료가 정치인보다 압도적이다. 그들 상당수에겐 ‘의전 총리’ ‘방탄 총리’ ‘대독 총리’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실세 총리’로 인정받던 인물은 사실상 김종필·이해찬 총리 정도였다.

총리가 의욕을 보이면 대통령은 불편해했다. 정권에 일정 지분을 갖고 기용된 박태준 전 총리마저 국무회의에서 경제부총리·청와대 경제수석·금융감독원장에게 조금 언성을 높였다가 낭패를 봤다. 경제지표 발표 수치가 서로 다른 것을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하자 김대중 대통령이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노트를 덮고 냉랭하게 일어서 버렸다고 한다. 박 전 총리는 이후 사표를 내기로 결심을 굳혔다고 추후 술회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 강영훈 전 총리는 소신을 관철시키기 위해 책상속에 넣어두었던 사표를 세 차례나 제출해야 했다. 권한을 행사하려다 보면 대통령과 싸우게 된다는 것. 이게 대한민국 총리제의 ‘역설’(逆說)이었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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