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재야운동가 계훈제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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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원로 재야운동가 계훈제 (桂勳梯) 씨가 14일 오전 8시쯤 서울대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78세. 1921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 그는 허름한 작업복 차림에 흰 고무신이 상징하듯 송심학성 (松心鶴性) 의 자세로 평생을 반독재.민주화 운동에 바친 야인 (野人) 이었다.

그는 50년 이상 현대사의 고비 때마다 불의에 맞섰다.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장이던 45년엔 '반탁운동' 에 참가했고 69년 박정희 정권 당시 3선개헌 반대투쟁위원회 상임운영위원을 맡았다.

50년대 초에 폐결핵으로 한쪽 폐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고도 앞장서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집회.시위.투옥으로 점철된 그의 삶은 80년대 전두환 정권 때에도 반독재.민중운동으로 이어졌다.

이후 민주화 열기가 최고조에 이른 87년 6.10 민주항쟁 때 전민련 상임고문, 91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고문을 맡아 활동하면서 노령에도 불구하고 민중운동에 몸바쳐 왔다.

제대로 된 직장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하고 평생을 이렇다 할 수입없이 지낸 그의 생계는 부인 김진주 (金眞珠.68) 씨가 그림을 팔아 꾸려왔으나 金씨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져 후진들이 모금운동을 펴기도 했다.

"통일되면 그때 주민증을 만들 생각" 이라며 주민등록증을 받지 않은 그는 지난해 9월 지병인 폐질환이 악화돼 병마와 싸우면서도 어지러운 세상을 걱정해 왔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별세 소식이 전해진 빈소에는 재야단체 인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金씨와 아들 여곤 (汝坤.29.고신대 의대3)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02 - 3675 - 0299) .

김기평.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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