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900회…18년6개월 최장수 방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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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드라마 MBC '전원일기' (일 오전11시)가 오는 21일 방송 9백회를 맞는다. 80년 10월21일 '박수칠 때 떠나라' 편을 시작으로 18년6개월이라는 유례 없는 장수를 누렸다.

'전원일기' 가 처음 방송된 때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화약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5공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었다. 당시 군사 정권은 '민속' '전통' 같은 것들을 아주 좋아했었다.

여의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국풍 81' 이 대표적인 예. 시민들이 정치니 민주주의니 하는 복잡한 문제들에 신경쓰지 말고 고향으로, 전통으로 돌아가 '안분지족' 하기를 바라는 위정자의 마음 때문이었을 게다.

'전원일기' 가 탄생하는데 그런 의도가 개입됐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시대 흐름과 맞물리며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만은 확실하고 제작진과 연기자가 순수한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했던 것 또한 분명하다.

최근까지 MBC 제작본부장을 지낸 이연헌 이사가 첫 연출자. '수사반장' 을 연출한 직후 이 프로를 맡은 당시 이PD는 '삼강오륜' 같은 전통 윤리를 과감하게 끄집어냈다.

남자와 여자가 한 상에서 밥을 먹지 못했고 젊은이들이 조금이라도 빗나간 언행을 하면 어김없이 어르신들의 호통이 날아들었다. 당시로서도 고답적인 풍경이었다.

"우리 것에 담긴 지혜를 찾자는 취지였죠. 미국의 개척시대를 그린 '초원의 집' 이 대를 물려가면서도 개척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았잖아요. 시대 변화에 관계 없이 시계 바늘을 정지시키고 싶었습니다. " 이이사의 회고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전원일기' 는 변화를 거듭했다. 때로는 에피소드 위주의 가벼운 터치로 흐르기도 했고 한때는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에 서기도 했다.

제작진이 바뀌면 등장인물이 한명씩 사라졌다 다시 우르르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흔들림을 거치며 초창기의 인기는 많이 퇴색했다.

그러다 보니 96년11월엔 화요일 저녁의 프라임 타임 (밤8시5분) 자리를 내주고 일요일 아침으로 자리 이동을 했고 간혹 '폐지설' 까지 떠돌기도 했다.

나무도 오래 살면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주는 마당에 '전원일기' 같은 드라마를 홀대해선 안될 일이다.

'그대 그리고 나' 의 김정수씨, '사랑과 성공' 의 김진숙씨 같은 작가 10여명 '내일을 향해 쏴라' '애드버킷' 의 기획자 이은규 팀장, '베스트극장' 기획자 권이상 팀장 등 PD 13명을 배출한 공로만으로도 대접받아 마땅하다.

단 농촌도 사회도 정권도 달라진 지금 어떤 시각을 담아야 옛 영화를 찾을 수 있을지 이종욱.김오민 작가와 최용원 PD.박복만 부장의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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