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극복 눈물의 '보통교육' 이대생된 이진영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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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올해 이화여대 미술학부에 입학한 이진영 (李珍令.20) 양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보청기를 끼고도 전혀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 2급. 의사 표현은 가능하지만 말도 더듬거린다.

그러나 올 봄 李양은 여느 여대생처럼 꿈 많은 새내기. 교수님 입을 보며 듣는 강의지만 열심히 공부해 특수학교 미술교사가 되는 꿈을 키우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싶다.

진영이가 생후 8개월만에 갑자기 고열.몸살에 시달리다 병원에 찾아갔을 때는 이미 늦었다.

중이염이 신경으로 옮아가 양쪽 귀의 청 (聽) 신경이 모두 끊어진 감각신경성 난청이란 판정을 받았다.

이때부터 진영이와 부모의 남모르는 고통이 시작됐다.

영등포구치소 교도관인 아버지 이정남 (李正男.54) 씨와 어머니 박상희 (朴商姬.47) 씨는 넉넉지 못한 살림에도 딸을 품에 안고 용하다는 병원과 한의원을 찾아다녔다.

매번 '재생불가' 라는 진단에 낙담하기를 4년. 평생 '귀머거리' 라는 설움을 가질지언정 '벙어리 냉가슴' 만은 면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머니 朴씨는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서울삼성학교 유치부에 다섯살배기 딸을 입학시켰다.

색종이를 밑에 두고 세게 불어 많이 흩어지면 '파' , 조금 흩어지면 '하' , 혀를 구부린 채 목청이 떨리면 '르' …. 李양은 목청.입술.혀.주변 사물의 움직임까지 일일이 기억하며 발음을 하나씩 배워나갔다.

옹알거림 2년만에 李양 입에서 '엄마' 라는 소리가 나왔을때 朴씨는 딸아이를 부둥켜 안고 밤새 울었다.

다른 청각장애아처럼 딸을 특수학교에 계속 진학시킬 것인지 고민 끝에 朴씨가 "세상과 만나야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않겠느냐" 며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가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李양은 어디선가 헬렌 켈러의 책을 가져와 "이…이 사람도 훌륭한 사람이 됐잖아요. 나…도 그렇게 될래요" 라며 일반 초등학교를 선택했다.

李양은 어린 나이에도 악착같이 공부했다.

수업시간엔 선생님의 입모양을 쫓아 한번도 딴 데 눈길을 두지 않았다.

모자라는 것은 친구의 노트를 빌려왔다.

그 결과 초등학교 6년동안 전과목 '수' 를 기록했다.

특히 음악시간엔 악기의 박자와 손모양 등을 기억, 반복 연습해 피리로 '과수원길' 을 불고 피아노 체르니 40번을 쳤을 때 李양은 선생님과 친구들의 눈물과 박수를 볼 수 있었다.

李양은 중학교 때부터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소리가 없는 흰 종이 위에 자신의 모든 것을 펼쳐보였다.

학교수업과 미술학원에 오가길 6년. 그녀는 지난해 수능시험에서 3백4점, 예체능계열 7%의 성적으로 당당히 이화여대에 합격했다.

초.중.고 12년 개근기록도 세웠다.

누군가와 대화하기 위해 입을 가만히 응시하는 李양. 그녀의 눈빛은 세상과도, 자신과도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빛났다.

최민우 기자

*** 이 기사는 중앙일보 전자신문 옥은희 명예기자의 도움을 받아 취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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