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정선아리랑 세계 곳곳에 울려퍼지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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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아리랑 460수를 복원, CD에 담아낸 김연수씨 가족. 사진 왼쪽부터 차녀 김순덕, 부인 전인식, 외손녀 김상아, 김씨, 장녀 김순녀씨. 장문기 기자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앞남산 호랑나비는 왕거미 줄이 원수요/우리들의 원수는 금전이 원수로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후렴)."

아리랑의 원형(原型)으로 불리는 정선아리랑. 서울.경기의 본조 아리랑, 전라도의 진도아리랑, 경상도의 밀양아리랑과 더불어 우리나라 4대 아리랑으로 꼽힌다.

하지만 정선아리랑을 따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노래라기보다 소리에 가깝기 때문이다. 장식음이 발달해 있지 않고 고음과 저음의 차이도 크지 않다. 마치 읊조리듯 툭툭 내뱉는 사설 같다.'악보를 그릴 수 없는 노래'라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그동안 어지간한 소리꾼이나 명창들도 정선아리랑을 CD나 레코드에 담아내지 못했다. 음반제작사 '신나라'가 15일 '삶의 소리, 천년의 노래 정선아리랑'이란 타이틀로 CD 8장(8시간 분량)에 처음으로 정선아리랑을 담아냈다.

아리랑을 부른 주인공은 대대로 정선에서 토박이로 살아온 김연수(71)씨 가족. 강원도 정선군 송오리에서 5대째 살고 있는 김씨와 부인 전인식(75)씨, 순녀.순덕.순이.순여씨 등 네 딸, 그리고 외손자 상근(21)씨와 외손녀 상아(15)양 등 모두 10명이다. 얼마 전까지 송오리에 거주했던 김씨의 누나 김옥자(75)씨와 처제 전귀봉(64)씨도 목소리를 합쳤다.

이들은 문헌에 전해져 내려오는 정선아리랑의 노랫말 4000여수 중 460수를 재연해냈다.'수'란 1절과 2절로 이뤄진 노래 한 토막을 말한다."새로 익혀 부르는 노래는 정선아리랑의 참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연습하지 않고도 소화할 수 있는 460수만을 녹음했다"는 설명이다.

이 CD가 나온 데는 신나라의 김기순 회장과 아리랑 연구가 김연갑씨(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가 큰 역할을 했다.

김 회장이 "원형에 가까운 본토박이의 정선아리랑을 CD화하자"고 제안했고 김 이사가 소리꾼 찾기에 나섰다. 하지만 정선 토박이이면서 원형의 맛을 그대로 살릴 수 있는 소리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1년여의 수소문 끝에 김씨 가족을 찾을 수 있었다.

김씨의 모친인 남효자(88년 작고)씨는 동네 경조사엔 빠짐없이 초대됐던 소리꾼으로 이름을 날렸고, 장녀 순녀씨와 차녀 순덕씨는 각종 경창대회에서 대통령상 등을 받은 적이 있는 소리꾼 집안이었다.

녹음작업에만 꼬박 6개월이 걸렸다. 농사일이 생업이다 보니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짬짬이 틈을 내 목소리를 담아야 했다.

김 회장은 "인간의 삶과 죽음, 용서와 화해, 저항과 울분이 녹아있는 아리랑, 그중에서도 아리랑의 원형에 가장 가깝게 남아 있는 정선아리랑은 한국을 넘어 전 인류가 보존해야 할 위대한 소리"라며 "앞으로 정선아리랑을 세계에 울려퍼지게 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신나라는 이번에 발매된 CD를 전 세계 대학 도서관.음악단체.박물관 등 200여곳에 기증하고 기네스 북 등재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정민 기자 <jmlee@joongang.co.kr>
사진=장문기 기자 <chang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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