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 열쇠는 국회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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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국회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국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청문회 당시 반짝했을 뿐 국회가 뭘 하는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눈길은 오로지 청와대에 쏠린다.

수석비서관 하나의 교체에도 화제가 집중되고 신문에 대문짝만한 해설기사가 실린다.

대통령과 총리간에 내각제 논의를 유보하기로 합의한 것 같다는 정무수석의 '감 (感)' 이 1면 톱이 된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까. 그러나 국회가 정치중심에서 멀리 비켜나 있는 기간이 너무 오래 계속되고 있고, 이는 범상하게 볼 일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의 비극은 대개 국회를 묵사발로 만든 데서 시작됐다.

그들에게 독재 또는 권위주의라는 꼬리가 붙고 국민의 저항을 받기 시작하는 것은 국회 무력화 (無力化)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문민정부를 자랑하던 YS정권때도 국회는 별 볼 일이 없었고, YS에겐 곧 독선.독주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국정철학으로 내세우는 DJ정부에서도 국회가 별 볼 일 없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국회가 정쟁 (政爭) 의 무대쯤으로 비하 (卑下) 되고 국회의원들이 저질.부패의 경멸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분명 심각한 상황이다.

야당의 비협조와 오랜 정쟁 탓도 있지만 이는 집권측의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벌써 신권위주의니 독주니 하는 비난이 나오기도 한다.

집권 1년에 대한 각계의 평가에서는 거의 만장일치로 국내정치분야에서 낙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주의의 중요한 척도인 검찰과 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은 크게 시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야당과는 계속 악화된 관계에 있고, 최근에는 정부운영에 있어서도 각종 정책혼선과 행정난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총선을 1년 앞두고 바로 집권 2차연도에서부터 어려운 정치환경에 빠진 셈이다.

이런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국회에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국회를 존중하고 활성화한다면 많은 문제는 쉽게, 저절로 풀릴 수 있다고 본다.

당장 金대통령이 가장 싫어한다는 "혼자 뛴다" 는 말도 국회가 활발해지면 쑥 들어갈 것이다.

신권위주의니 독주니 하는 말도 사라질 것이다.

정책혼선이나 행정난맥도 사전에 국회 토론이나 공방전을 통해 걸른다면 많은 부분 교통정리가 될 것이므로 예방이 가능하다.

지금 야당은 집권측을 향해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라" 고 요구하고 있다.

물론 회답은 "인정한다" 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 될까. 중요국사를 일일이 야당과 협의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공동정권이거나 거국내각일 때 할 일이다.

그럼 어디서 어떻게 파트너로 인정할까. 그건 국회에서 할 일이다.

국회를 활성화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야당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이다.

야당이 국회에서 활발히 목소리를 내고 그걸 정부가 경청하고 쓸만한 의견을 국정에 반영한다면 야당에도 일정한 힘이 생긴다.

그럼 "야당이 되니까 후원금도 안 들어온다" 는 여당이 듣기 거북한 소리도 잠잠해질 것이고 대통령이 야당 당사가 안팔린다고 관심을 보일 필요도 없어진다.

뿐만 아니라 국회가 평소 검찰과 정보 기관을 감독.감시하는 기능을 살린다면 권력시녀니 편파적이니 하는 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지금 경제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재계를 설득하고 노동계를 달래고, 경상도로 달려가고 어민들을 만나는 등 동분서주하고 있다.

만일 국회가 활성화돼 이런 각계의 소리가 국회에서 유감없이 대변되고 밤새워 머리가 터져라 격론이 벌어진다면 각계는 일단 행동에 앞서 숨을 죽이고 국회의 토론결과를 지켜볼 것이다.

정부로서는 그만큼 부담을 덜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국회가 정치중심이 되고 활성화된다면 건전한 여야관계, 각계각층의 갈등과 이해대립의 조정 등 실로 무궁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같이 국회를 폐허처럼 두고는 여야총재회담을 해봐야 효과는 그때일 뿐 다시 여야관계는 악화되고 국내정치는 요모양 요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여당은 주저할 필요가 없다.

이미 여대야소 (與大野小) 아닌가.

문제는 민주주의신념과 실천의지일 뿐이다.

원래 국회에서 성장했고 의회주의자인 金대통령이 국회를 자주 방문하고, 간 김에 어쩌다 야당총재실에서 환담을 나눈다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국회 활성화가 케케묵은 소리 같아도 열쇠는 거기에 있다.

송진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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