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 1년]'사랑'도 '사회'도 바꾼 기적의 알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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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96년 공화당 후보로 미국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 밥 도울 (76) 전 상원의원의 부인이자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엘리자베스 도울 여사는 최근 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밥은 참 얌전한 사람이었는데…. 비아그라는 놀라운 약이네요." '기적의 알약' 으로 불리며 온갖 화제를 낳았던 비아그라가 세상에 선보인 지 이달로 벌써 1년이 됐다.

부작용 등의 논란은 있지만 비아그라는 인종.종교.이념을 넘어 그동안 발기부전으로 고심하던 전세계 1억명의 '고개숙인 남성' 들에게 새 삶을 가져다 줬다.

미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위크는 비아그라를 '98년 최고의 상품' 으로 꼽았고 포천지도 비아그라를 개발한 파이저사를 '가장 존경받는 미국기업' 으로 선정했다.

◇ 사회적 변화 = 비아그라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남성들의 '정신건강' .온갖 스트레스, 주가 하락, 실직에 대한 두려움 등 이런저런 일상사에 시달리다 정작 집에 가면 부부생활에서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중고 (二重苦) 를 겪어온 중년남성들이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다.

지난해 미국의 노동생산성이 97년에 비해 5% 가까이 향상된 것이나 미국의 소비수준이 사상 최고수준으로 치솟은 것, 그리고 이혼율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 모두 비아그라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같은 비아그라의 인기는 역설적으로 현대인이 얼마나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남성 호르몬은 나이가 들면 자연적으로 감소하게 마련이지만 그보다는 스트레스나 심적 요인에 의해 더 좌우된다는 것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아그라가 성생활의 본질까지 바꾸지는 못한 것 같다.

자연스런 사랑의 감정보다 성적 기쁨을 우선시할 가능성에 대해 대다수가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CNN이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대다수 여성들은 "내 남편이 비아그라를 사용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고 응답했다.

◇ 비아그라의 경제학 = 비아그라는 신약개발 경쟁을 부추긴 것은 물론이고 본격적인 생활약품 시장의 개막을 알렸다.

비아그라 출시 전 1천5백60만달러에 불과했던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은 98년 4월 단번에 1억4백만달러 시장으로 성장했다.

부작용이 알려지면서 5천1백만달러 수준으로 줄어들었지만 1년 전에 비해 무려 5배나 성장한 것이다.

비아그라의 최고 수혜자는 뭐니뭐니 해도 파이저사. 비아그라는 지난해 세계 53개국에서 7억8천8백만달러어치가 판매됐다.

한국 제약업계 전체 매출의 두배가 넘는 규모다.

그러나 이는 당초 예상했던 10억달러에는 못미치는 수준이다.

부작용이 드러난 데다 정력제가 아니라 치료제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판매실적이 수그러들었기 때문이다.

◇ 효능 및 후유증 = 지금까지 드러난 비아그라의 효능은 발기를 지속시키지만 발기 자체를 유도하지는 않는다는 것. 복용 후 30분~4시간 사이에 성적 자극이 없으면 발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발표된 논문들을 종합할 때 비아그라의 효능은 10명 중 7명꼴. 드물지만 두통이나 얼굴이 붉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심장질환이 있는 경우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실제 한햇동안 1백30명의 미국인이 갑자기 찾아온 '청춘' 을 자제하지 못하고 황천길로 갔다.

이 때문에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는 비아그라를 아예 독극물로 규정하고 있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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