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삶이다]1. 집은 '더불어 삶'위한 열린 공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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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올해는 '건축문화의 해' 다.

올 한해 그 어떤 거창하고 그럴 듯한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주위 환경과의 맥락을 고려한, '생각이 들어간 집짓기' 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또 얼마나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지를 전문가 기고로 생각해 본다.

서울에서 달동네 운동가로 변신한 한 미국인 신부는 의식주 (衣食住) 란 말에 담긴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의아해 한다.

이 말이 삶의 기본조건과 그 우선순위를 가르킬진대 중요도 순서로 따진다면 의당 '식.의.주' 라는 것이다.

한국어 수업과정에서 한동안 '선생' 을 '생선' 으로 혼동하곤 했다지만, 상식에 어긋난 의식주 어순에 대한 반응은 날카롭다.

삶의 기본의 하나인 집관련 화제는 단연 살림집이다.

집 없는 사람은 내집 마련이, 집 가진 사람은 마음에 드는 내집 짓기가 평생 꿈인 점에서 개인적 중대사고, 마을과 도시의 땅 대부분은 살림집이 차지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중대사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는 농본사회였고, 집 하면 초가집이었다.

근대화 바람이 불자 초가집은 한시바삐 벗어나야 할 가난의 상징으로 지목되면서 대신 붉거나 파란 원색의 함석 또는 양기와 지붕이 농촌을 수놓는다.

건축가 등 식자들은 고향의 정취가 사라진다며 개발정책을 비난했지만, 막상 초가집 주인의 반응은 '물정 모르는 소리 말라' 며 단호하다.

유서깊은 고장에 남아있는 한옥에 대해서도 이해 당사자들 시각이 초가집에서처럼 엇갈린다.

현대적 난방설비 등을 넣을 수 없어 기존 한옥은 사람들이 살지 않으려 하고, 비싼 건축비 때문에 새 설비가 구비된 한옥은 더 이상 지어지지 않는다.이렇게 우리 생활권에서 멀어지고 있는데도 한옥에 대한 건축계 평가는 오히려 상종가다.

선배 건축가들은 후배들에게 안동 병산서원이나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을 보라고 부추기다 못해 감격을 강요할 정도다.

한옥의 구조학과 미학은 자랑스럽다.그러나 넉넉한 자연과 어울려야 제 맛인 한옥의 정취를 고밀 도시에 구현할 방법은 무엇인지, 어디에도 신통한 대답이 없다.

좀 엉뚱하게도 국민 정체성을 구조물에서도 찾으려는 정부 쪽이 우군 (友軍) 이 되어주고 있다.

한옥 원리주의자의 말에 솔깃해져 공공건물이 콘크리트 한옥 또는 기와지붕만 뒤집어쓴 양옥 등 '양복에 갓 쓴 꼴' 로 생겨나곤 한다.

초가집과 한옥이 사라진 자리에 아파트가 살림집의 간판이 되었다.

공동주택의 급팽창은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다.

빠른 산업화가 유발한 많은 도시 인구를 저렴한 비용으로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은 고층아파트 건립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그것은 소비자 구미와 맞아떨어졌다.

이제 농촌까지 번진 아파트 단지를 보고 외국 식자들은 '사회주의적 양식의 자본주의적 생산' 이라 촌평했다.

사회주의식으로 꼭같은 모양의 아파트가 자본주의적으로 대량생산되었다는 말이다.

최근엔 주춤하지만 서울의 아파트는 짓기가 무섭게 팔려나가는 판국에 새롭게 설계해보겠다는 건축 시도가 먹혀들 틈새가 없었던 것이다.

서울이 세계로 미래로 뻗어간다고 법석이지만 아직도 변두리에는 달동네가 남아 있다.

보통 사람이 중산층이 되었다고 자부하는 서울 생활의 뒤안에서 그간 당국과 달동네 사람 사이에 철거 실랑이가 이어졌다.

서울 올림픽 개최에 앞서 강행된 도시미화작업은 참으로 파괴적이어서 마침 유엔이 '무주택자의 해' 를 기념하는 모임을 갖고 세계에서 달동네 빈민들에게 가장 가혹한 나라로 남아공과 한국을 가려 지탄했지만 당국은 딴청이었다.

외국전문가들은 한국의 달동네집은 제3세계 경우와는 달리 내구성있게 지어졌으니 그 자원도 아낄 겸, 남달리 자립심이 강한 우리 빈민들이 도시 생활에 찬찬히 적응할 수 있도록 성급하게 허물지 말도록 권고한다.

사실 달동네는 공중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고생스러움이 있지만 어쨌든 빈민들에겐 비바람을 막아주는 대피소요, 인정을 나누던 마을의 공동체적 미풍이 아직도 살아있는 곳이다.

이 자생적 도시구역 주민들이 핍박 속에서 들풀처럼 생존을 이어가는 어려움인데도 몇몇 빈민운동가의 손길 말고는 고립무원인 것은 딱한 일이다.

'좋은 환경은 인성을 살찌운다' 는 주장만 내세우지 우리 건축가가 달동네 주거개선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건축가의 위상이 계속 흔들리는 사이에도 아프면서 자라는 아이처럼 우리의 생활건축은 적잖은 진전이 있었다.

물리적으론 대피소, 그리고 위생기술적으론 해우소의 구실이 갖추어져 가정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는 바탕이 되어준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집이 개인의 보금자리로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아무리 현대 도시생활일지라도 남과 더불어 살아감이 사람다운 삶의 최소조건인만큼 보금자리로되 그게 '열린 보금자리' 이기를 이 시대 건축론은 대망 (待望) 한다.

김형국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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