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단군이래 최대사업의 부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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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농.축협 비리에 이어 농어촌 구조개선사업의 난맥상이 감사원 감사결과 밝혀졌다.

영농자금을 지원받아선 농사는 짓지 않고 술집이나 주유소를 경영하며 다방에 죽치고 앉아 목소리만 높였던 이른바 '다방 농사꾼' 들의 실태는 충격적이다.

'단군 이래 최대 사업' 이라며 무려 42조원을 쏟아부은 농촌 구조개선사업은 본격적인 농촌기반 마련이라는 공도 있지만 관리부실로 '먼저 본 사람이 임자' 라는 식의 총체적인 '도덕적 해이' 로 이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소의 귀에 바코드를 부착시켜 체계적인 관리를 하겠다던 소 전산화 작업이나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외국산 자재를 무더기로 도입해 무작정 짓고본 유리온실 사업 등은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저 돈만 풀어대다 보니 이제와서는 빚을 갚기가 어려워져 연대보증을 선 사람이 야반도주하는 등 마을이 풍비박산날 정도의 사회문제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당시 중앙일보를 비롯한 언론들이 이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농림부는 그때마다 적반하장격으로 "농촌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비현실적인 비판" 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었다.

하지만 최근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결과를 통해 당시의 지적이 틀린 것이 아니었음이 속속 밝혀지자 농림부는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당시 허위보도 운운하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까지 했던 정치인 출신의 강운태 (姜雲太) 전 장관 같은 이는 이제 이같은 결과에 대해 어떤 변명을 할지 궁금하다.

올해부터 2004년까지 6년 동안 다시 45조원의 막대한 재원을 투자하는 제2차 농어촌 구조개선사업이 시작된다.

농림부는 최근 가짜 브루셀라 백신파동을 겪으면서 당시 정책에 참여했던 담당국장부터 사무관까지 담당 공무원들의 이름을 실명으로 게재한 백서를 발간한 바 있다.

과거를 타산지석 (他山之石) 으로 삼아 실수의 반복을 막겠다는 뜻이었을 게다.

앞으로는 바로 이러한 마음으로 '이름을 걸고' 정책을 펴는 책임행정의 모습을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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