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는 도시들]2. 케임브리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 공부하고 단일 지역으로 최다 노벨상 수상자 (51명) 를 배출한 곳. 전자 (1897년) 와 원자 (1923년)가 발견되고 DNA 구조 (1953년)가 규명된 지역.

지난 1백년 동안 세계를 변화시켜 왔다고 자부하는 첨단 과학의 산실' .영국의 대표적 학술도시인 고도 (古都) 케임브리지에는 이같은 꼬리표가 붙어 있다.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시 (市) 청사 2층 사무실에서 만난 데이비드 로버츠 도시계획과장은 지도를 펼쳐놓고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케임브리지에 기업들과 돈이 몰려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케임브리지대의 지혜와 민간 기업의 기술이 절묘하게 조화될 수 있기 때문이죠. " 그의 말대로 시내 곳곳에는 일류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도시바.암젠.선마이크로시스템 등 첨단 산업체가 65개나 몰려있는 기업단지 '사이언스 파크' 를 앞세워야 할 것 같다.

보스턴에 '오피스 파크' 가 있다면 케임브리지에선 사이언스 파크가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곳의 기업들은 거의가 신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아식스 제네틱스사는 현재 식물에서 추출한 원료로 '식용 (食用) 백신' 을 개발중이다.

B형 간염이나 콜레라 예방을 위한 것으로 4~5년내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케임브리지 디스플레이 테크놀로지사는 지난해말 발광 (發光) 플라스틱으로 만든 컬러 비디오 디스플레이를 개발했다.

스탠퍼드 리서치 인스티튜트의 케임브리지 지사는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는 본사와 공동으로 구어 (口語) 통역장치 개발에 나서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이 회사의 연구원 프렌 웽은 "외국인과 상담할 때 굳이 잘 모르는 상대방 언어를 사용할 것 없이 이 장치를 이용해 자기 언어를 사용하면 상대방 언어로 자동 통역된다" 고 소개했다.

아직은 영어.프랑스어.스웨덴어만 가능하다.

케임브리지도 오늘이 있기까지 몇차례 굴곡을 겪었다.

옛 영화와 전통에 집착하는 영국인 특유의 보수성 탓에 변화에 뒤처진 쓴 경험이 있다.

지난 50년 나온 홀포트 - 라이트 보고서의 부작용이 한 예. '도시보존을 위해 성장을 제한해야 하며 따라서 새 산업이 케임브리지에 들어서서는 안된다' 는 요지의 보고서는 정부에 의해 채택돼 당시 첨단 과학분야에서 한창 기세를 올리던 케임브리지를 약 20년간 침체에 빠뜨렸다.

그즈음 이곳에 유럽연구개발단지 본부를 건설하려던 IBM의 신청도 시당국에 의해 거부됐다.

그후 1969년 네빌 모트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내놓은 산학 (産學) 협동 제안서가 새로 채택됐다.

이에 따라 71년 대단위 첨단 기업단지 사이언스 파크가 건설됨으로써 케임브리지는 하이테크 중심 지역으로 발돋움할 계기를 맞았다.

고속성장을 거듭하던 케임브리지는 80~90년대 초반에 걸쳐 영국 전체에 불어닥친 경기침체로 또한번 위기를 맞았다.

자본력이 약한 소규모 벤처기업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맥도널 더글러스.올리베티 등 대기업들에 의한 중소기업 합병 등 이합집산을 겪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는 영국경제 회생과 함께 이곳에도 활기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케임브리지대가 고고함을 떨치고 상아탑에서 나와 기업과 적극적으로 손잡은 것은 도시 재도약의 결정적인 발판 역할을 했다.

대학의 연구 성과는 기업을 거쳐 시장에 신속히 반영된다.

케임브리지 사람들은 이 도시의 부흥을 스스로 '케임브리지 현상 (Cambridge Phenomenon) 2' 라고 부른다.

과거의 모습에서 한차원 '버전 업' 됐다는 의미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 견줘 '실리콘 펜 (fen.소택지대)' 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최근 "한때 실망스럽던 '케임브리지 현상' 이 지금은 생명공학.텔레커뮤니케이션.정보기술 등 첨단 분야를 개척함으로써 유럽의 실리콘 밸리가 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 표현했다.

기업인들간의 정보 네트워크 '케임브리지 네트워크' 가 펴낸 '케임브리지 2020' 이라는 보고서는 '21세기에도 이 지역의 화두는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가 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케임브리지 시내 서쪽에는 현재 2020년 완공을 목표로 새로운 기술연구단지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외부로부터의 투자도 매년 늘어 97년에는 컴퓨터황제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 소프트사가 무려 5천만파운드 (약 1천억원) 를 투입하기도 했다.

물론 문제점도 있다.

파운드화 강세가 수출전선을 가로막고 있고 여기에 아시아의 경제위기가 가세하고 있다.

그럼에도 케임브리지는 분명 전진하고 있다.

순수과학의 요람이라는 옛 명성에 더이상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투자하며, 21세기형 첨단 기술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을 도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벤처기업 경영주 모임인 '체이스' 의 로리 반 소머런스 대표는 "케임브리지는 쓴 경험을 교훈삼는다는 단순한 원리로 재기에 성공하고 있다" 며 "그 방법은 낡은 사고를 버리고 기술혁신에 전념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케임브리지 = 정선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