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활 쏜 지 3년 만에 태극마크 단 황생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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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취미로 양궁을 즐기던 사람이 태극마크까지 달아 화제다.

울산 세계양궁선수권대회 컴파운드 국가대표로 나선 황생욱(39·부산양궁클럽·사진)씨 얘기다. 황씨는 현재 다니고 있는 외국계 조선 회사에 연차 휴가계를 내고 이번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양궁 사상 첫 ‘동호인 대표’가 된 황씨는 2일 울산 문수양궁장에서 열린 컴파운드 남자 개인전 예선에서 1346점으로 74위를 기록했다. 그는 “잠을 제대로 못 자서인지 평소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황씨는 “하루 내내 화살을 쏴본 적이 없어 적응이 잘 안 된다. 변화무쌍한 바람도 예측하기 어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예선전은 약 5시간 동안 경기를 한다. 컴파운드는 올림픽 종목인 리커브와 활 종류가 다르다. 활 크기가 작고 도르래 등 보조기구가 달려 있어 주로 동호인들이 사용하고 있다. 올림픽과 전국체전에서는 정식 종목이 아니지만 세계선수권에선 정식 종목이다. 유럽이나 북미의 컴파운드 대표는 대부분이 동호인이다.

황씨는 2006년 취미로 처음 활을 잡았고, 이듬해 국내 2차 컴파운드 대회에서 덜컥 우승을 했다. 그리고 지난해 1차 대표선발전에서 2위를 기록하자 내심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1~3차 선발전 종합 3위(총 3명 선발)로 당당히 태극 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막상 회사와 가족들은 탐탁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황씨는 “올해 연차만 벌써 16일째 쓰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셋째 아이를 낳은 아내에게는 “활 쏘러 다닐 시간에 가족 얼굴 좀 보라”는 잔소리를 듣고 있다. 그래도 황씨는 “노란색 10점 과녁에 화살을 명중시켰을 때 느끼는 쾌감이 끝내준다”고 ‘양궁 예찬론’을 이어갔다.

동호인 대표로서 느끼는 고민도 덧붙였다. 그는 “전문 선수들인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많다”면서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막상 동호인들은 실력 있는 지도자를 만날 기회가 적다. 엘리트 선수들이 생활체육 지도자로 나설 수 있는 인프라가 있다면 한국 양궁 지도자들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가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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