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남 탓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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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전국시대 사상가인 양주(楊朱)에게는 포(布)라는 이름의 동생이 있었다. 그가 하루는 흰옷을 입은 채 집을 나섰다. 볼일을 본 뒤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만났다. 거센 빗줄기에 옷이 다 젖었다. 양포는 옷을 검은색으로 갈아입었다.

먼 길을 걸어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 때 집 문 앞에 이르렀다. 문을 들어서려는 그를 보고 집의 개가 사납게 짖기 시작했다. 비에 젖은 채 고생 끝에 겨우 도착한 그는 화가 치밀었다. 주인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집의 개에게 짜증이 나고 만 것.

이윽고 그는 옆에 있던 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개를 때리려고 손을 드는 순간 형 양주가 나타났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양주는 동생을 타일렀다. “그것이 어디 개의 잘못이겠느냐”는 말이다. 흰옷을 입고 문을 나섰다가 검은 옷으로 갈아입은 사람은 동생 자신. 게다가 어둑해진 저녁에 집 문 안으로 들어선 상황으로 볼 때 개가 짖는 것은 당연하다는 나무람이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우화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바깥에서만 찾으려는 자세를 지적하고 있다. 상황의 변화를 몰고 온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많은 경우는 자신이 그 출발점이다. 우화는 문제의 해결을 위한 진지한 내적 성찰을 권유하고 있다.

진정한 용기는 잘못을 자신으로부터 찾는 데 있다. 맹자(孟子)도 “활을 쏘면서 스스로 자세를 가다듬어 쏘되, 지더라도 상대를 탓하지 말고 스스로에서 구하라(反求諸己)”고 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물어라(反躬自問)’ ‘문을 닫고 조용히 잘못을 생각해 보라(閉門思過)’는 경구도 같은 의미다.

국회사무처가 의원 배지의 문양을 고치기 위해 나선 모양이다. 배지 가운데 들어앉은 ‘혹(或)’이라는 글자가 ‘의혹’이란 뜻의 ‘혹(惑)’을 닮았다는 게 이유란다. 전형적인 남 탓이다. 스스로의 몸가짐과 행위를 반성치 않으면서 배지를 무슨 부적처럼 여기고 있으니 한심하다.

국회의 일그러진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잘못은 국회의원 스스로에게서 찾는 게 옳다. 배지의 모양새를 고친다고 이미지가 개선될 것이라 기대한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행여 배지 위의 글자를 ‘국회’ 발음의 영어 이니셜 G나 K로 바꿀 생각 말라. 지금의 행태가 이어진다면 국민들은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읽을 것이다. ‘곰탱이’와 ‘콩가루’.

유광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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