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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석학.정치지도자에게 듣는다] 3.포울 슐뤼테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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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만난사람 = 이종성 코펜하겐대 동양학부 교수]

- 덴마크는 최근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적은 나라로 선정됐습니다. 부패정치인은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뇌물이나 기타 부정행위를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사실인가요.

"그렇습니다. 저는 이 점을 퍽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는 1백50년이란 긴 역사를 갖고 있는 덴마크 민주주의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발전하면서 국민들 사이에 부패나 친인척 등용 (nepotism) 을 반대하는 관습과 문화.사상이 형성됐기 때문에 부패가 점차 줄었다고 생각합니다. 부정부패 일소는 진정한 민주주의 발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 정부정책이나 법률 외에 부정부패 방지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무엇인가요.

"저희는 오랜 세월에 걸쳐 완전한 언론자유를 이루었습니다. 따라서 기자들은 비리나 어떤 흥미로운 소재를 자유롭게 찾아내고 그 실상을 공개할 수 있습니다. 또 정치인이나 사업가들도 자신들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 부패가 발생하기 전에 문제 사안들을 공개해 부패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즉 언론의 자유가 부정부패를 없애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

- 부패방지에는 국민 스스로의 자각과 언론의 영향이 더욱 크단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한국에서도 87년 이후 민주주의가 착실히 발전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이념은 단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투표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 모든 부문에 걸쳐 민주주의 이념이 배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몸에 배어 있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민주주의 역사가 짧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 발생하는 한국의 제반 문제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이념이 사회 구석구석으로 잘 전달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이러한 표현은 사회에 대해 책임의식을 져야 합니다. 민주화라는 것은 상호협력을 배우는 것이고, 그것을 반복하면서 타협을 통해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양보와 타협' 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

- 총리께서는 한국을 두번 방문하셨는데 한국에서 받은 특별한 인상은 무엇입니까.

"한국 사회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지요. 또 부지런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국민들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한국은 전통교육 문화를 유지하면서 산업화를 목표로 전진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지요. 아시아에서는 많은 공장이 문을 닫게 돼 직장이 많이 줄었지만 한국은 높은 교육을 받은 인력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는 다시 회복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

- 총리께서 취임하셨던 82년 덴마크 경제사정은 극도로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경험을 좀 들려주시지요.

"당시 덴마크 경제는 아주 어려웠죠. 적자만 쌓이고 있었어요. 그때 제가 취한 첫 대책은 크로네화 (貨) 와 외국 통화간의 환율을 고정시킨 것입니다.

전에는 크로네화 가치가 빈번하게 올랐다 내렸다 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높았습니다. 이 조치는 경제회복에 큰 도움을 주었지요. 또 봉급인상률도 크게 낮추었지요. 전에는 물가상승률에 따라 자동적으로 월급이 10~20%까지 인상됐는데 이것을 저는 2% 수준으로 묶어 두었습니다.

이 두 조치가 경제회복의 밑바탕이 됐다고 봅니다. "

- 총리께서 취하셨던 일련의 개혁조치를 일컬어 감자치료라고 부르던데요. 이를 좀 더 설명해주시죠.

"당시 수년간 덴마크에서는 국민들의 과소비가 큰 문제로 등장했습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은행대출을 많이 얻어 부채가 상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인플레이션이 심해 카드를 이용하거나 빌려서라도 오늘 당장 물건을 사고 다음에 갚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죠.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이른바 '감자 치료' 라는 경제정책을 도입했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절약하자는 뜻이지요. 부채를 줄이기 위한 조치로 은행대출이나 부채로 무는 이자에 대해 특별세금을 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빚을 얻겠다는 생각에서 저축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국민들을 유도했습니다. 그후 저축이 많아지고 빚이 줄어들면서 덴마크 국민경제가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

- 덴마크에서도 한때 10% 이상의 실업률을 기록한 때가 있었지요. 한국도 경제위기 이후 기업구조조정과 금융개혁 과정에서 상당한 실업자가 나왔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한국에 실업자가 많이 생긴 이유는 많은 기업이나 은행.공장들이 부도가 났기 때문이죠. 실업문제를 해결하려면 한국은 앞으로 자유시장경제를 유지하는 동시에 통일된 인사정책을 세움으로써 한국 기업들이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고 경제가 허락하는 한 구매력 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물론 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큰 어려움을 극복한 이후에야 가능하겠지만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유일한 방안이라고 봅니다.

"

- 화제를 바꾸어 보죠. 덴마크는 사회주의계와 비사회주의계의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비교적 안정된 정국을 유지할 수 있는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사실 덴마크 국회는 8~10개의 당으로 구성돼 있어 정치적 합의가 쉽지는 않습니다. 다당제인 결과로 정부는 언제나 소수당 내각입니다. 제가 10년 이상 소수당 내각의 총리로 있었을 때 제가 입안하는 법안에 대해 처음부터 다수가 지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이 사실은 물론 야당에서도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따라서 여당과 야당은 협상에 협상을 거듭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서로 양보하고 서로 책임질 수 있는 법안을 합의하에 도출하곤 했습니다. 말하자면 여당과 야당은 상호 대립적 위치에 있으면서 동시에 협력자 또는 협력당이 됩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초요, 덕목이라고 할 수 있지요. "

- 한국은 지금 여야가 대립하는 가운데 협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총리께서는 한국의 정치발전이 어느 정도 진전돼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현재 한국의 언론계가 정치판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하고 평론할 수 있다면 올바른 길에 와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산업발달은 한 세대를 뛰어 넘는 속도로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민주화도 이와 같은 속도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

- 덴마크 국민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활을 보장받고 있지요. 그리고 이같은 복지제도는 세금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구요. 그렇다면 복지시설의 혜택을 받는 층과 세금을 부담하는 층 사이에 사회적인 갈등은 없는지요.

"이 문제는 끊임없이 토론의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지제도가 더 발전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세금은 내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덴마크는 너무 지나친 복지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서 받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사회복지 이념은 일종의 긴급 또는 응급조치로,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했을 때 또는 장기적으로 불구자가 됐을 때 도와주는 것입니다. 덴마크의 경우 실업수당이 상당히 높습니다. 대부분 정부가 부담하죠. 이런 점에서 보장의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의견이 최근 많은 국민으로부터 대두되고 있습니다. "

- 마지막으로 덴마크의 사례와 관련, 바람직한 노사관계에 대해 조언해주시지요.

"덴마크는 노동조합과 경영자연합회가 대부분의 문제를 자기네들끼리 해결해온 오랜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이 두 단체가 임금이나 휴가.사회보호제도 등 여러 문제를 논의해 협정이 체결되면 정부나 국회는 이 합의를 추인합니다. 덴마크에서는 노조나 경영자연합이 상당히 강합니다. 따라서 정부나 국회는 노동시장 문제에 개입하지 않아도 됩니다. "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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