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기념관 모조품으로 채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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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 남산 자락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천장 높이의 대형 영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엔 시든 꽃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하얼빈 의거 때의 장면을 보여주는 스크린엔 ‘앞에 서면 15초 뒤 영상이 나온다’는 안내문과 ‘장비 고장으로 정비 중’이라는 게시물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재판 과정, 옥중 생활 영상을 틀어주는 스크린도 먹통이었다. 의거 100주년을 맞는 안 의사의 정기(精氣)는 이렇게 모국 땅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었다.

1970년 건립된 기념관엔 유묵·유품 100여 점이 방문객을 맞고 있다. 그러나 안 의사가 지인에게 보낸 엽서와 건국공로훈장 등을 빼면 대부분 모조품이다. 40여 점의 유묵은 물론 각종 사진과 신문 자료 등도 마찬가지다. 기념관 측은 진품 유묵 7점을 보유하고 있지만 보안 등의 문제로 서울역사박물관에 위탁 보관 중이다.

기념관 관계자는 “안 의사 가족이 모두 중국과 연해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해 유품이 많지 않다”며 “일본·중국·미국에 8점, 국내에 50점의 유묵이 있지만 4억~5억원을 호가해 확보가 어렵다”고 밝혔다.

기념관 측은 “내년 10월에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에 10개 전시실을 갖춘 새 기념관이 완공된다”고 밝혔다. 안중근의사기념관건립위원회가 주축이 돼 지난 4월 착공에 들어간 기념관에는 총 150억원이 투입된다. 130억원은 국고로, 20억원은 국민 성금으로 충당한다. 현재 11억5000만원가량이 모였다. 모금운동을 이끄는 대학생문화연합동아리 생존경쟁의 류호진(25) 회장은 “새 기념관 건립은 역사를 보존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자부심을 느낄 만한 영웅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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