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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서 철거됐던 ‘안중근 의사 동상’ 귀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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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06년 1월 16일 하얼빈시 유로백화점인근에 세워졌던 안중근 의사 동상. [안중근 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

서울 남산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입장권에는 외투 자락을 날리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세의 동상 사진이 찍혀 있다. ‘의거의 현장 하얼빈 시에 세워져 있는 안중근 의사 동상’이라는 설명이 달려 있다.

그러나 이 동상은 중국에 없다. 지난달 29일 인천항에 도착, 1일 통관 절차를 마치고 서울로 온다. 동상이 귀국 길에 오른 건 ‘외국인 동상 건립을 불허한다’는 중국 정부의 입장 때문이다.

동상은 2006년 1월 16일 하얼빈시 유로백화점 근처에 세워졌다. 하지만 한국 언론에 동상이 소개되면서 11일 만에 철거됐다. 동상은 그 후 제작자인 재중사업가 이진학(51)씨의 사무실에 보관돼 왔다.

15년간 중국에서 백화점 사업을 해온 이씨는 “중국 정부의 원칙은 알았지만 한·중 관계가 좋았고 투자자로서 시 관계자와 사이가 원만해 일단 세우면 철거가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평소 캄보디아 기업인보다 일본 농민이 더 대접을 받는 건 국가의 위상 때문이라고 여겼던 이씨는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안 의사 동상 건립을 강행했다고 한다.

안 의사가 감옥에서 쓴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란 글귀를 보고 군인이 된 친구가 디자인을 자처했다. 이씨는 “현직에 있어 이름을 밝히긴 어렵지만,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의거한 안 의사와 같은 신분인 군인이 디자인한 데 의미가 있다”며 “남산에 있는 기존의 안 의사 동상을 기본으로 했다”고 말했다. 제작은 양스창(楊世昌) 하얼빈공대 교수가 맡았다. 하얼빈 빙등제를 만든 양 교수는 중국에서는 손꼽히는 조각가로, 이씨는 외국인 동상이라는 이유로 제작을 고사하던 양 교수를 다섯 번이나 찾아가 성사시켰다.

동상 귀국을 기획한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 측은 지난달 27일 안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뤼순재판소에 들러 진혼제를 올렸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안 의사 동상 설치는 난관에 봉착했다. 뤼순재판소에서 진혼제가 열리기 전날 국가보훈처는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검증되지 않은 하얼빈 동상의 공공장소 설치는 부적절하다’며 보도자료를 냈다. 동상은 안 의사의 가묘가 있는 효창공원에 임시 보관된다. 아직 동상을 세울 장소는 마련하지 못했다. 이씨는 “서거 후 100년이 다 되도록 찾지 못한 안 의사의 유해를 찾는다는 심정으로 만든 동상”이라며 “의거 현장에서 온 유해라고 여기고 고국에서 반겨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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