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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여야에 대한 간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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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새 정부는 1년내내 바람 잘 날 없이 세풍.총풍.사정풍.국회 529호사건.검란 (檢亂) 등의 사태로 시달려 왔다.

여당은 반쪽 경제청문회를, 야당은 장외투쟁을 강행해 지역감정을 부추겨 정치가 혼란에 빠졌다.

경제가 이제 겨우 살아나는 마당에 여야는 정치투쟁만 하고 있어 오히려 경제회복을 방해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경제의 파산은 정경유착과 부패에 원인이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국가위기에 대한 책임과 반성은 고사하고 당리를 위해 파행 (跛行) 의 정치행태를 보이고 있어 국민을 분노케 한다.

이 어려운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 시대에 국민은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할 지 한숨만 쉬고 있다.

지난 1년간의 경제 대란 속에서 국민은 얼마나 뼈저린 고통의 날을 보내 왔는가.

그러나 정치인들은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만 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민본 (民本) 사상을 기본으로 해 왔다.

민본사상이 흔들릴 때마다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더구나 민주주의란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치인데 과연 여야는 국민을 위해 정치투쟁을 하고 있단 말인가.

정치인들은 언제나 민심을 파악해야 한다.

현재 국민이 생활을 꾸려 나가는데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또 국민이 현 정국을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지 정치인들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국민이 정치인들을 얼마나 원망하고 있는지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야당 일부에서도 "여당과 맞서 싸워야 할 때도 있지만 투쟁 일변도로는 민심을 잡을 수 없다" 면서 "지금 한나라당에는 투쟁만 있고 정치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고 지적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과거 야당의 모습을 답습하지 말고 집권 경험을 살려 정책정당으로 태어나기를 국민은 바라고 있다.

투쟁만 일삼는 야당이 아니라 한편으로 여당에 협력하고, 또 한편으로 여당의 잘못을 질책하는 융통성 있는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의식구조의 민주화는 되지 않고 있다.

여당 단독 청문회.동서화합의 정계개편, 그리고 야당의 방탄국회 사고방식은 구 시대의 산물이다.

야당은 정치인 사정이 편파적이기 때문에 이를 방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간다면 의원구속.정치개혁은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이왕 국회가 열렸으니 여당도 국회에 동참해 야당이 제기한 여러 현안도 함께 논의하기 바란다.

더구나 근래 북한 금창리 핵 지하의혹 시설과 관련해 3월 또는 5월 위기설이 나와 국민은 우리 경제가 수렁으로 빠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굳게 지켜질 수 있도록 미국과 공조.협조 문제를 여야가 같이 머리를 맞대고 슬기롭게 해결해야 한다.

여당은 동서화합의 정계개편보다 동서화합의 정치를 펴야 한다.

정당정치에서 정계개편은 선거에 의해, 국민의 표에 의해 이뤄져야 마땅하다.

인위적 정계개편으로 지역갈등의 해결을 모색한다는 것은 일시적 해결책은 될 수 있으나 많은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

과거 3당합당의 실패를 우리는 경험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감정을 초월해 전 국민이 일체감을 가질 수 있는 올바른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폭넓고 큰 정치를, 전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정치, 국민의 고통을 풀어주는 활발한 정당정치를 한다면 동서 화합의 시대가 저절로 전개될 것이다.

그러려면 민주적 정당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급선무다.

권위주의 시대에 해오던 행태를 계속 반복한다면 개혁이나 발전은 없다.

정치안정이 없이는 정치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

야당도 집권당 시절의 정치적 책임을 씻으려면 협력 정당체제를 갖춰 우선 경제난국을 극복하는데 정부.여당을 밀어줘야 한다.

이것이 책임정당이며 수권정당으로서 자리를 잡는 길이다.

민주화시대에는 여야 각당 의원들이 소신있게 자기의 정견을 의회에서 발표할 수 있고, 지도부의 지시에 관계없이 투표할 수 있는 정치를 해야 의회정치가 발전할 수 있고 선진국가가 될 수 있다.

작금의 상황은 낡은 정당정치의 껍질을 벗어 던지고 정치문제를 의회내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는 계기가 없이는 해소될 수 없다.

변화란 발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민의 정부시대로 바뀌었으니 국민이 중심이 돼 평화스러운 정치를 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정치도 바닥을 쳤으니 이제는 상승세로 가는 정치가 돼야 한다.

앞으로 정치가 경제의 걸림돌이란 말이 사라졌으면 한다.

정치는 더 이상 정치인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생활의 질을 향상해 국민이 즐기는 정치가 돼야 한다.

국민이 늘 즐거워 함박웃음을 웃는 정치를 우리는 바라고 있다.

민준기 경희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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