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병용 시행되면…] 문화부 '기본틀 변화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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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9일 정부가 '한자병기' 를 결정하자 한글학회 등 한글 관련 연구기관들이 일제히 반발, 또다시 어문정책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문화관광부의 한자병기 방안은 앞서 국무회의에서도 찬반양론이 맞섰으나 문화관광의 진흥이라는 국정 목표를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쪽으로 결론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부는 문화관광 육성을 위해 제안한 한자병기안이 예상 외로 큰 논란을 빚자 "이번 조치는 한글 전용의 원칙 아래 필요할 때만 한자를 병용하자는 것으로 현행 문자 정책의 기본 틀을 수정하는 것은 아니다" 며 진화에 애쓰고 있다.

◇ 국무회의 =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신낙균 (申樂均) 문화관광부장관이 한글.한자의 병용방안을 안건으로 전격 제안하자 회의 분위기가 금새 달아올랐다.

최재욱 (崔在旭) 환경부장관이 바로 "한자 병용방안은 큰 진전" 이라고 평가했다.

崔장관은 "정부 보고서에서 이미 한자 혼용 (混用) 이 이뤄지는 이상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어 "한자교육을 전혀 실시하지 않는 것은 문제" 라며 "입시에 한자문제를 하나라도 넣어야 한다" 고 한술 더 떴다.

그러자 정부 공문서를 총괄하는 김기재 (金杞載) 행자부장관이 "당장 공문서에 한자를 병용하기보다 이를 2단계로 미뤘으면 좋겠다" 며 반론을 폈다.

金장관은 "기본원칙에는 찬성하나 그간 한자표현을 우리말로 풀어쓰려는 노력이 진전을 보여왔고 한자교육에 상당한 공백이 있었다" 고 지적했다.

이런 논쟁에 김대중 대통령이 가세했다.

金대통령은 "중국에선 정자체 (正字體)가 너무 복잡해 간자체 (簡字體) 를 쓰고 있으나 젊은이들이 전통문화를 이해할 수 없게 돼 지금은 후회한다" 며 한자 병용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단계적 실천론을 중재안으로 제시했다.

金대통령은 "한자를 갑자기 혼용하면 혼란이 있을 수 있어 시간을 두고 전문가의 연구와 토론을 거쳐야 한다" 며 신중한 자세를 주문했다.

◇ 관련단체 = 그동안 한글전용 운동을 추진해온 한글학회 (이사장 허웅) 는 이번 조치에 대해 "일반 대중들 사이에 한글이 한자에 비해 우세한데도 새삼 한자 병용을 추진하는 것은 시대를 거스르는 처사" 라고 비판했다.

반면 한자 혼용과 초등학생들의 한자 교육을 주장해온 한국어문회 (이사장 이응백) 는 "한자는 조어력.함축성.축약성이 뛰어난 표의 (表意) 문자이므로 한글과 한자의 조화는 이상적인 문자 운용" 이라며 찬성했다.

◇ 일선 교육현장 = 수색초등학교 전한준 (全漢俊.60) 교장은 "전통문화의 올바른 이해 차원에서 정부의 조치에 대환영" 이라고 말했다.

남정호.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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