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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개교 100주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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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고려대 개교 100주년(5월 5일)을 맞아 3일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세계 대학총장 포럼’에 참석한 각 대학 관계자들이 전통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이 나라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인 보성전문이 탄생하니 기대하시라."

1905년 2월 22일자 황성신문은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이하 보전)의 설립을 이렇게 알렸다. 그해는 을사조약이 체결돼 일본의 국권 침탈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5일 개교 100주년을 맞는 고려대의 역사는 이렇게 국운이 벼랑 끝에 몰렸을 때 '교육 구국'의 이념에서 출발했다. 설립자는 당시 대한제국 황실의 재정 책임자인 내장원경(內臟院卿) 이용익 선생이었다. 고종 황제는 '널리 인간성을 계발하고 실현시킨다'는 뜻의 '보성(普成)'이라는 교명을 친히 내렸고, 설립 후 수년간 해마다 1200원(당시 교수 월급 30원)을 지원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의 러시아어 학교를 빌려 개교한 보전은 법률과(현재의 법학과).이재과(경제학과) 등 2개 학과로 출발했다. 전문학교로 틀을 잡아가던 보전은 을사조약 체결 후 이용익 선생이 해외로 망명하고 일본이 황실 재산을 국고로 이관하면서 심각한 자금난을 겪게 된다.

나라가 일본에 합병된 1910년 보전을 천도교 지도자인 의암 손병희 선생이 인수한다. 당시 보전을 지탱한 재원은 전국 300만 교도가 끼니마다 한 숟갈씩 모은 성미(誠米)였다.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다시 재정 위기에 빠진 보전은 1932년 인촌 김성수 선생이 경영을 맡으면서 발전의 전기를 맞았다.

인촌은 안암동에 50만 평의 학교 부지를 매입해 지금의 석조 본관과 도서관을 짓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하던 1943년 한국 학생들까지 학도병으로 동원됐다. 그러나 보전 학생들은 마지막까지 지원에 반대하며, 연희전문.경성제대 학생들과 함께 학병 거부운동을 주도했다. 일제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44년 보전을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로 강제 개명했다.

해방 후인 1946년 보전은 정법대학.문과대학.경상대학 등 3개 단과대학으로 구성된 종합대학으로 승격됐다. 이름도 현재의 고려대학으로 바꾸었다. 당시 새 교명으로는 서울.조선.한국.안암 등 여러 가지 안이 제시됐으나 결국 고려가 선택됐다. 우리 역사 중 가장 강성했던 고구려의 기상을 계승한다는 점과 영문 표기가 국호(Korea)와 같아 외국에 알리기 좋다는 점 등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고려대는 인재를 배출하는 요람이기도 했지만 독재에 항거하는 저항의 중심지였다.

이승만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4.19혁명도 전날 부패정권 타도를 외치며 국회의사당 앞까지 진출한 고려대생들의 4.18시위가 도화선이 됐다.

유신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75년엔 시위사태로 고려대에 휴교령을 발동한 대통령 긴급조치 7호가 내려졌다. 한 대학만을 상대로 한 전무후무한 조치였고, 이 사태로 김상협 총장이 사퇴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또 87년엔 5공 정권의 4.13 호헌 조치에 맞서 교수 30명이 대학 최초로 직선제 개헌을 위한 서명에 참여, 민주화 운동의 불길을 댕겼다.

90년대 들어 고려대는 명륜동에 있던 의과대와 부속병원을 안암동 본교 캠퍼스로 이전하고, 이공대에 산학종합연구단지를 조성하는 등 대학 교육의 질적 변화에 나섰다. 특히 2003년 어윤대 현 총장이 취임한 이후 고려대는 세계 유명 대학과 학생 교류를 확대하고 국제화 교육을 강화하는 등 '민족 고려대'에서 '세계 고려대'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100년의 역사 동안 23만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고려대는 걸출한 인재들을 키워냈다.

4.19 직후 내각 수반을 역임한 허정 전 총리, 어린이날을 제정한 소파 방정환, 서울대 교수와 학술원원장.문교부 장관 등을 지낸 국사학계의 태두 이병도, 문예지 '개벽'을 창간한 차상찬,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 우승자인 서윤복, 쌍용그룹 창업주 김성곤, 삼양사 명예회장 김상홍,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원기, 현대그룹 회장을 지낸 정세영(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국회부의장과 신민당수를 지낸 이철승, 민주당 대표였던 이기택 등이 모두 고려대(보전) 출신이다.

전통적으로 인문사회 분야가 강하다는 평가를 듣는 고려대는 정.관계에 진출한 동문이 많다. 17대 국회의원 중 고려대 출신은 김덕규 국회부의장,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포함해 10.4%를 차지한다. 또 김대중 정부 시절 장관의 13.5%가 이 학교 출신이다. 관계에는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 허준영 경찰청장 등이 현직에서 활동 중이다. 이명박 서울시장도 고려대 출신이다. 법조계에서는 김종빈 검찰총장, 유지담 대법관, 주선회 헌재 재판관 등이 현직에 있다. 고려대는 지금까지 5명의 법무부 장관과 5명의 검찰총장을 배출했다.

재계에도 영향력 있는 동문이 많다. 국내 100대 주식 부자 가운데 고려대 출신이 23명이고, 상장기업 대표이사의 14%가 고려대 졸업생이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사장, 이웅렬 코오롱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학수 삼성 부회장, 김남구 동원증권 사장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정철근.이충형 기자

*** 어윤대 총장 인터뷰

고려대 어윤대 총장은 3일 "이제 고려대는 '민족'이란 수식어에서 벗어나 '세계'로 나가야 될 변화의 분기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개교 100년을 맞아 각종 기념행사로 분주한 어 총장에게 새 세기를 맞는 고대의 비전을 들어봤다.

-개교 100주년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고대 100년의 역사는 우리 민족 근현대사와 함께해 왔다. 고대는 앞으로 세계와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국제적인 명문대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새 세기 고대의 비전은.

"국제화 추구와 이공계.의대 집중 육성이 최대의 화두다. 최근 경영.경제학 등은 아시아 최고수준으로 도약했으나 이공계와 의대 등은 경쟁력을 더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 이공계 학생에 대한 장학금 혜택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 이공계 캠퍼스에 주차장과 피트니스센터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1만1000평 규모의 지하광장을 조성 중이다. 의과대의 경우도 연구동과 정보통신관을 새로 건립하는 등 인프라를 확충할 계획이다."

-취임 이후 강력한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성과는.

"국제화 추진계획의 핵심은 외국어 능력 강화다. 영어 등 원어 강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높여 나가고 있다. 영어 강의는 우리 학생들에게도 필요하지만 고대로 유학오는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더 확대할 수밖에 없다. 외국 유학생 입장에서는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고대를 선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외국인 교수도 100명까지 늘릴 방침이다."

-2010년까지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재원조달 계획은.

"취임 후 지금까지 2000억원 정도 모았다. 많은 기업과 동문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

정철근 기자

*** 903명 유학 가고 600명 유학 오고 캠퍼스 국제화

"유학생으로서 불편한 건 없어요. 학교 측이 교환학생에 대한 지원을 많이 해주기 때문이지요. 영어로 진행하는 강의도 많아 편해요."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다 고려대 경영학과로 유학을 온 다나 신(22)은 고려대의 시설이나 강의가 국제적인 수준이라고 칭찬했다.

올해 다나 신처럼 고려대에 유학 온 외국인 학생은 모두 600명. 반대로 외국에 유학을 간 고려대 학생은 903명에 이른다. 2002년만 해도 유학 온 외국인 학생은 71명, 유학 간 고려대생은 151명에 불과했다.

고려대 측은 내년의 경우 외국인 유학생과 해외 유학 고려대생이 각각 1000여 명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려대는 유학 가는 학생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2002년 캐나다 UBC대에 고려대생 전용기숙사(100명 수용)를 지었다. 또 연말까지 중국 런민대, 영국 런던대 로열할러웨이대, 미국 UC데이비스대, 일본 와세다대, 호주 그리피스대에도 전용 기숙사를 지을 계획이다.

고려대로 유학 오는 외국인 학생과 교수들을 위해 지난 3월 말엔 최신 시설의 외국인 전용 기숙사인 CJ 인터내셔널 하우스를 개관했다.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 바로잡습니다

5월 4일자 6면 '고려대 개교 100주년'기사 중 문예지 '개벽'을 창간한 인물은 하상찬이 아닌 차상찬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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