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명곡20] 1.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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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앞으로도 '고전' 으로 남을 20세기 음악은 무엇일까. 다음 세기에도 언제나 모차르트.베토벤메 머물러 있을 것인가. 본사 음악전문기자가 20세기 음악사를 수놓아온 작곡가 20명의 대표작 20곡을 선정해 차례로 소개한다. 현대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현대음악에 친숙해져야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볼만한 명곡들이다.

1913년 5월13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 이곳에서는 세계 공연사상 전무후무한 '난동' 이 벌어졌다. 관객.평론가.작곡가.연주자 모두 분노와 충격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러시아발레단이 피에르 몽퇴 지휘, 니진스키 안무로 초연한 스트라빈스키 (1882~1971) 의 '봄의 제전' .서주부터 객석에서 터져 나온 폭소는 그날 대소동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이윽고 관객들은 성난 폭도처럼 휘파람을 불면서 연주자와 작곡가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그러자 입석표를 사서 들어온 젊은이들은 이들 청중에게 욕을 퍼부으면서 몸싸움을 벌였다. 음악적인 문제로 청중이 '폭동' 을 일으킨 것은 사상 처음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작곡가 생상은 인상을 찌푸린채 일찌감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파리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큰 소리로 껄껄 웃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오른 스트라빈스키는 객석을 빠져나와 백스테이지로 갔다. 그곳에는 안무가 니진스키가 의자 위에 올라서서 무용수들에게 하나 둘 셋 박자를 세어주고 있었다. 관객들의 소란으로 오케스트라가 전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무용수들이 경련에 가까운 동작을 취할 때마다 객석에서는 '여기 의사 좀 보내줘요!' 라고 야유를 퍼부었다. 무용수들은 무서워 떨면서 눈물을 흘렸다.

5관 편성 (1백5명) 의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원시적이고 불규칙적인 리듬과 타악기 음향, 참을 수 없는 불협화음…. 얄팍한 감성을 건드리는 우아한 선율 위주의 음악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청중의 기대감을 태풍처럼 휩쓸어 버렸다.

초연 당시 파리 청중과 평론가들을 경악케했던 '봄의 제전' 은 그후 '현대음악의 주춧돌' (피에르 불레즈) '음악의 해방자' (사티) 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20세기 최고의 명곡으로 남아있다. 이곡이 1941년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 '판타지아' 에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 스트라빈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과 함께 등장한 것만 봐도 스탠더드 레퍼토리의 대열에 합류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음반도 30여종의 녹음이 나와있다.

1929년 영국 더 타임스지는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이 19세기의 대표작이라면, '봄의 제전' 은 20세기의 대표작" 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덕분에 스트라빈스키는 아방가르드 음악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를 움직인 문화예술인 20인' 중 클래식 음악가로 유일하게 포함되는 영예를 안았다.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초연 이후 이곡은 마사 그레이엄.피나 바우시.모리스 베자르 등 내로라하는 20세기 무용가들이 앞다투어 안무를 발표했고 국내에서도 국수호.이정희씨 등이 이 음악에 안무한 무용작품을 만들었다.

◇ 추천음반 = ▶몬트리올심포니 (지휘 샤를 뒤투아.데카) ▶버밍엄심포니오케스트라 (지휘 사이먼 래틀.EMI) ▶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 (지휘 피에르 불레즈.소니 클래시컬)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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