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선거혁명 … 54년 만에 정권교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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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1 야당인 민주당이 30일 중의원 선거에서 집권당인 자민당에 압승했다. 민주당 당사에서 개표 상황을 지켜보던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가 당선자 이름 옆에 장미꽃을 붙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패전 후 일본을 이끌어온 거함 자민당호가 국민의 개혁 열풍에 완전히 침몰했다. 1955년 보수연합으로 탄생한 자민당 일당 지배 체제는 54년 만에 막을 내렸다. 참의원에서 다수당인 민주당은 중의원에서도 압승해 일본 정국을 단독으로 주도할 수 있게 됐다. ‘새 일본’을 내세운 민주당에 의해 일본의 정치·행정·외교·사회 등 많은 분야에서 획기적인 개혁의 물결이 흐를 전망이다.

30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31일 0시50분 현재 총 480석 가운데 306석을 차지했다. 자민당은 119석에 그쳤다. 지지(時事)통신 등은 이날 투표율이 96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최고인 69%를 넘은 것으로 추산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는 “정책을 펼치려면 최소 4년이 필요하다”며 “약속대로 (사민당·국민신당과의) 연립 정권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친민주당 성향은 319석, 친자민당 성향은 139석이어서 민주당은 참의원에 관계없이 중의원에서 법을 만들 수 있는 320석 이상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또 내년 7월 참의원에서도 승리해 중의원·참의원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전략이다. 새 총리는 다음달 14일 시작되는 특별국회에서 선출된다. 하토야마 대표가 차기 총리가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하토야마는 “54년간 자민당 체제에 강한 불만을 가진 국민은 새로운 일본을 선택했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는 “일개 당원으로 자민당 재건에 힘쓰겠다”고 밝혀 자민당 총재에서 사임할 뜻을 밝혔다.자민당 3역도 물러나기로 했다.

일 정계에선 대대적인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 민주당의 젊은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일본 현역 의원 중 최장(16선·29년)인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78) 전 총리,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전 부총재 등 자민당의 60대 이상 거물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등은 가까스로 당선됐다.

민주당의 압승은 자민당의 실정에 실망해 변화를 열망해온 일본 국민이 만들어낸 일 정계의 지각 변동이다. 자민당이 관료들과 손잡고 밀실 정치 등으로 주물러온 통치 구조와 정책 결정 과정이 달라질 전망이다. 가타야마 요시히로(片山善博) 게이오(慶應)대 교수는 “자신들의 권한과 권익을 지키는 데 급급해온 관료 개혁은 일본이 직면한 가장 본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토야마는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중앙집권제도와 관료가 주도해온 정치 시스템을 지방분권과 정치 주도로 바꾸는 역사적 사명”이라고 말했다. 이용철 와세다(早稻田)대 교수는 “일본에서는 정권 교체가 정책 변경이 아니라 집권 체제를 바꾸는 혁명으로 간주됐다”고 말했다.

 도쿄=김동호·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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